허기를 달래듯 맑은 공기와 함께 반주로 소주 몇 잔을 마시면 천하가 내 것이요. 어찌 그리 기분이 좋을 수가!
현대사회는 산업화 정점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정보화 첨단화로 치닫고 있다. 이런 가운데 농촌은 갈수록 어렵게 풀려나가는 위기의 시점에 우리 사회는 많은 교훈을 남겨둔다. 도시민들은 그 교훈을 뼈저리게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고 기성세대가 자녀를 갖고 있다면 최대의 관심사는 자녀교육에 있어 도시를 찾게 될 것이다.

자녀교육으로 인한 소득과 지출에 대한 구조가 가장 큰 항목 중 하나인 가운데 주거환경과 복지시설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중 농촌은 도시에 비교해 월등히 뒤떨어지고 있는 이때 고향을 지키고 그리워 찾은 사람이 있으니 그는 대덕읍 양하리 출신 재경향우 오응후(73) 사장이다.

오 사장은 중소기업 사장에서 농부의 직업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전면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홀로 지내면서 하루 이틀 끼니를 때우고 살아간다는 것은 오사장의 정신력과 애뜻한 고향사랑이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도시민들은 통상적으로 이렇게들 말한다고들 한다. 시골살이의 어려움을 부딪칠 때 내가 시골을 선택했는지, 무엇을 얻기 위한 위험인지 마음에 부담이 크다고들 이야기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 사장은 오직 고향산천과 흙과 향기 그 정치와 냄새를 한꺼번에 만끽하며 남은 여생을 고향을 위하여 적게나마 할 일 있다면 보탬이 되고 나의 조상과 부모형제가 계시는 곳에서 살겠다는 푸짐한 포부의 말로 잘라 말한다.

오응후 사장은 철부지 같은 사춘기의 18세 어린 나이에 당시 육군본부에 근무한 집안아저씨의 도움으로 무작정 상경하여 단국대학을 거쳐 20여년간 필리핀에 여자 센달공장(슬리퍼)을 설립한 중소기업인으로 성장하였으며 정년을 이주로 장남에게 회사를 맡기고 귀국하여 지난 3월 이곳 대덕읍 양하리 마을에 25평 남짓한 한옥집을 리모델링하여 포근한 안식처를 마련하였으며 산책과 컴퓨터 등의 취미와 집주위의 고추, 배추, 과일주를 심어 무공해 식품 키우는데 여가를 보내고 마당 잔디밭에는 잔디가 푸릇푸릇 돋아 올라 보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고 있었다.

오사장은 마을 대동회나 어려운 일에 물심양면으로 도우고 있으며 고생해서 벌었지만 그 돈 다 뭣하겠나? 생각해 보니 다 쓰지도 못하고 여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하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요즘들어 서울에서 친구들에게 안부전화가 오면 이렇게 잘라 말한다고 한다. 자네들 무엇하고 있는가? 빨리 내려오지 않고 혼자라도 서슴없이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것이다. 또한 고향을 찾은 친구들은 하루 저녁을 같이 보내기도 하는데 이제 우리집이 친구들의 별장이 되어버렸다고 허허 웃기도 했다.

아내는 건강상 서울에 있지만 한 번씩 내려오면 변해가고 있는 주위의 환경을 보고 칭찬하며 마냥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2~3개월에 한 번씩 필리핀에 다녀오는 것도 오 사장의 일상생활이다.
그러다보면 나와 내 아내의 생활방식이 농촌과 도시 생활에 맞지 않은 것들이 변해가는 가정 속에 무수한 많은 교류가 흐른다고 빙긋이 웃는다.

농촌과 도시의 격차, 인간의 마음 됨됨이가 중요하고 생각하기 달렸지만 나에게는 항상 고향은 나의 안식처요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고 말하며 향우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