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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향우/마산 ‘고물천사’ 조필만씨이웃사랑 베풀던 어머니 그리며 불우이웃 돕기 운동 펴 넉넉치 못한 살림에서 매월 60여만원치 이웃돕기에 사용
김선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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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6.16  17: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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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푼이 폐지-고물모아 ‘30년 이웃사랑’

“조금씩 모아 베푸니 기쁨이 더 큽니다.”
경남 마산시.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폐지와 재활용품을 모아 판돈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장흥출신의 한 주민이 있어 화제다.

마산시 노산동 주민자치센터에서 일용직 쓰레기 불법투기 단속반으로 일하는 조필만(曺必萬, 61)씨.

그는 장평면 축내리 출신으로 장평초등학학교를 졸업하고, 장평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어려움으로 더이상 학업을 게속하지 못하고 경남 부산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다가 지금은 마산에서 살고 있다.

정식 출근시간은 아침 9시임에도 조씨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각종 고물을 실을 손수레 한 대를 끌고 동네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무학산 사찰부터 동네 상점 일대를 돌면서 폐지나 재활용품을 모은다.

그의 폐품 수집은 입김이 하얗게 쏟아지는 한 겨울 새벽에도 하루도 빠짐없는 첫 일과다.
새마을 운동의 상징인 녹색 모자를 눌러쓰고 연방 땀을 닦으며 박스를 고이 접어 손수레에 옮기고, 고물 가전 제품인 데도 자식 안 듯 고이 들어 손수레에 담고.....

이렇게 4~5시간여를 돌면 어느새 가득 폐지가 쌓이고 이를 팔면 1만5000~1만8000원의 현금이 모인다.

주말과 휴일에도 어김없이 오후 늦게까지 폐지 수거를 한다.

■‘노산동 고물천사’로 불리는 조필만씨

이처럼 하찮은 고물을 줍는 사람이지만, 마산시 노산동 주민 중에는 이 사람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만큼 동네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녀도 반갑게 인사하는 동네 아낙들과 어르신들을 보면 더 힘이 나서 고물을 줍는 사람. 하늘에서 보냈다는 소리를 듣고 사는 ‘노산동 천사’'고물천사'로 불리는 이가 바로 조필만씨다.

그가 '-천사'로 불리는 것은 고물과 폐품 수집으로 마련한 돈 중에서 일부 떼내고 이를 차곡차곡 모아 마련한 월 60여만원의 돈을 관내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정, 장애인, 결손가정 등 200여 가구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에도 한 달 동안 모은 돈으로 그는 쌀을 구입해, 홀로 사는 독고노인들에게 전달했다.

그는 설날과 추석 등 명절이면 쌀과 과일 등을 산 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소리없이 전달할 뿐 아니라, 인정에도 가전제품을 기증하고 곰팡이 핀 집에는 도배와 장판을 교체해주는 등 외롭고 처지가 딱한 어르신들을 돕고 있다.
그가 그동안 중고가전제품을 노인정 등 필요로 하는 곳에 지원 해준 곳은 1250여군데에 이를 정도다.

그는 또 열악한 환경속에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편안한 학습공간을 마련해 주고자 샘터공부방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무료급식소에 쌀과 고기, 과일 등을 지원하고 불우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는 불우한 노인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각별하다. 이제 60고개를 넘어서 장성한 네 아이의 아버지인 그에게도 마음의 고향이며 생각만 하면 눈시울 붉어지는 어머니가 가슴 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조씨 고향은 장평면 축내리

전라도 장흥군 장평면 축내리가 조씨의 고향이다. 1948년 전남 장흥에서 부 조점옥공과 모 이행례여사 슬하에서 태어났다(형 조대석씨는 현재 장평면 바르게살기운동 협의회 회장이다)
유년을 보낸 곳이지만 고생과 서러움이 그대로 밴 곳이다. 남의 집 살이를 하시던 아버지. 그래서 집안 3남매의 생계는 어머니에게 달려있었다.

어머니가 젓갈 장수를 해서 네 식구는 겨우 연명을 했다. 고구마와 감자로 끼니를 채우던 배고픈 시절. 하지만 어머니는 허물어 가는 집에 거지가 찾아오더라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당신이 드시던 밥 한 숟갈 마저도 쪽박에 넣어주셨던 것이다. 어린 마음에 원망도 했다. 다같이 배고픈 입장에 베푼다는 것은 사치였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치라고 생각한 인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열다섯이 되던 해. 조씨는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자리를 잡았다. 소학교 졸업에 야간 중학교에서 한자밖에 배운 것이 없던 조씨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사였다.
굶주린 배를 채우자고 시작한 것이 당시 처녀들과 부녀자들의 가슴을 녹이던 ‘동동구리모’ 장사였다. 제법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인정’은 어쩔 수 없었다.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부산 영도 다리 주변의 거지들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당신이 드시던 밥을 나눠주던 기억이 마음속에서 싹텄기 때문일까? 버는 돈의 일부는 거지들의 끼니를 해결해주는데 투자했다. 마음씨 착한 동동구리모 장사 조씨의 소문은 이곳저곳으로 퍼져갔고 조씨의 손님은 갈수록 늘어났다. 돈을 모았을 때 평생 가난으로 고생한 고향의 부모님께 집과 논 1200평을 사드렸다.

19살이 되던 해, 4년간의 부산 생활을 청산하고 마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방의무 때문이었다. 다행히 방위로 복무할 수가 있었다. 당시 교원동에 위치한 나도라 화장품대리점에서 낮에는 화장품을 팔러 돌아다녔고 밤에는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화장품 장사로 번 돈으로 시골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살아가는 형님의 장가를 보냈다.

그리고 자신도 스물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전라도 보성출신 여인과 중매결혼을 했다.
하지만 고향집에 돈을 다 보냈기 때문에 집 한 칸 마련할 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교원동에 월 4000원짜리 방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성실과 인내밖에 없던 조씨는 전자제품 회사에 수금 사원으로 입사해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4남매를 남부럽지는 못하더라도 똑바르게 키웠다.

97년 구조조정을 당했지만 별달리 힘들지는 않았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찾은 곳이 무학산 백운사였다. 법당에 들어서 부처님께 기도를 할 때마다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리고 헐벗고 못먹던 어린 시절, 가난했어도 거지에게 밥 한숟가락 떠주었던 어머니, 그 어려운 살림에도 불우이웃을 돕는 모습을 떠 올렸다.

그리하여“나보다 불우한 사람을 돕자”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나보다 못한 사람. 가난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을 찾아, 라면 한 박스, 쌀 한 포대라도 전해보자는 계획이 섰다.
그래서 고물을 주우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보다 남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온 그는 그동안 각계 각층으로부터 지역봉사에 대한 공훈과 찬사를 받아 1983년 마산시장표창을 시작으로 2002년 마산시장 봉사상, 2003년 시의회 봉사상, 2002년 마산시새마을회장상, 2004년 마산시재활용 최우수상, 2007년 경상남도새마을 최우수상, 2006년 삼성재단 대통령상(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씨의 선행이 감동적인 것은

그의 선행을 잘 아는 한 주민은 "조씨의 참봉사와 선행이 감동을 주는 것은 폐지와 재활용품 수집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정작 지원 금액이 부족할 경우, 생활비에도 빠듯한 채 100만원이 안되는 월급을 쪼개며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제가 혼자서 돕는 게 아니에요. 주위에서 남은 음식 물건등이 있으면 항상 연락을 해요. 동네 어른들 갖다 주고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곤하죠. 어찌 보면 저는 전달하는 사람밖에 안되지요”라며 겸손해 하는 조씨. 하지만 그의 입에서도 불평은 나온다.

“있는 사람들, 크게 도울라고 그라지는 몰라도 평소에는 10원 한푼 없어요. 항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에요. 부자들도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면 어려운 사람이 덜 배고플텐디….”
남 돕느라 정열적이면서도 정작 조씨 자신의 집은 넉넉지 않다. 그러나 아내 구점남(58)씨도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 가타부타 하지 않는다.
아마 조씨의 부인이며 자식들이 그의 선행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조씨의 선행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가 이렇게 하는데 집사람이 많이 도와줬지요. 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 아무도 말리지 못혀요.”

역시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조씨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듯, 현재 조씨 막내딸 민희(26)씨도 그렇다.

지난 2006년부터 미용사로 일하는 민희씨도 북마산 경로당 17명의 노인들에게 이발을 해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휴일마다 경로당과 불우한 이웃의 집을 방문하여 미용봉사를 하고 있다.
새벽이면 눈 뜨면 밖으로 나가 고물을 줍고, 그것을 팔고, 나누며 살아가는 고물천사 조필만씨.
그는 오늘도 그의 손수레는 사랑을 싣고 오늘도 내일도 노산동 골목 골목을 누빈다.
"조금씩 도와주고 있지만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할 때 안타깝다.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이웃을 돕고 싶다”면서
“자신이 가진 것을 주위에 조금씩 나눠주는 보탬이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필만 프로필>

▲1948년 8월 28일생 전남 장평 축내리 出身

▲本貫:창녕

▲장평중학교 졸업

▲마산시 새마을 회원

▲마산시 새마을 부회장

▲마산시 교방동 무학산 백운사 처사

▲마산시 새마을총무회 1대 회장

▲마산시 노산동 반장

▲그동안 30여년 동안 지역민의 손과 발이 되어 열심히 봉사해 온 조필만씨는 '남의 도움에 최선을 다하자'는 가훈아래 부인 구점남여사와 슬하에 승희등 3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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