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인세대, 후손들에 자랑스런 모습 보여주어야 한다"
남은 여생-다문화 가정 외국인 여성 돕기 운동에 바칠 터


대한노인회가 주도하는 (사)어린이유괴·성범죄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 장흥군지부는 지난 1월 9일 공식 발족했다. 이 모임은 지난 해 3월 ‘혜진·예슬양 사건’ 이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를 뿌리 뽑자는 취지로 결성된 순수 민간단체 전국적으로 어린이 유괴 및 성범죄 사건이 빈번해진 사회현상에 즈음, 어른들이 앞장서서 사회악으로부터 어린이들을 지키는 범국민운동을 펼친다는 목표로 결성됐다.


따라서 이 모임은 민간단체인 대한 노인회를 중심으로 전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 전대미문의 파렴치한 어린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리하여 지난 해 4월 대한 노인회 각 지부에서 대대적인 발대식을 가졌으며, 이후 전국의 5만 6000여개 경로당을 중심으로 활동이 펼쳐졌고 지난해 10월 사단법인 인가도 받았다.


장흥군의 경우, 국민운동본부 장흥군 지회(공동대표 김평환)는 지난 1월 9일 정식으로 장흥군지부를 발족한 바 있다.
이 운동이 전 국민운동으로 추진 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운동본부는 지난 4월 23일 대한노인회 중앙회강단에서 제1회 어린이 안전지킴이 운동 활동 발표회를 가졌는데, 장흥군지회는 여기서 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대한노인회 중앙회강단에서 개최된 이날 발표대회에는 예심을 거쳐 선정된 전국 우수지회 8곳이 본선 발표대회에 나섰는데, 장흥군지부 활동을 주관해 온 김평환 지부장이 발표, 2등산인 은상을 수상한 것이다.

■어린이 지킴이 활동 ‘모범적’

“지난해 4월 17일, 국민운동본부의 중점과제 설정과 함께 중앙본부결의대회를 마친 이후 장흥군도 활동에 본격 들어갔지만, 이에 대한 군 예산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우선 본인이 사비(5백만원 상당)를 들여 교육, 홍보, 실천이라는 3단계 방법으로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첫째, 노인회원들의 교육을 위해 어깨띠를 제작, 군과 읍면별로 본 취지의 교육과 결의대회를 실시했으며 기관 및 사회단체에 회의 자료를 게재토록 하고 교육과 함께 협조 체제구축에 나섰습니다.


둘째, 관내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교문에 현수막을 게시하고 협조 공문을 발송했으며 각 학교에 직접 지회장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셋째, 외국인 한글학교에도 교육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이용, 홍보활동을 실시했으며 군과 읍면소재지에도 현수막을 게시했으며 임직원 차량에 어린이 유괴·성범죄추방 국민운동 우수표어를 제작, 부착하도록 했으며 각 분회장에게 명함 각 500매씩 제작해 경로당 방문시 홍보할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이밖에도 저희 장흥군지부는 ▲장흥군지회 우편봉투에 중앙회우수작 표어를 새겨 활용 ▲마을방송망을 이용한 아침, 저녁으로 방송 추진 ▲각 경로당에 별도 활동조를 편성, 매일 5회 이상 마을주변 및 골목길을 돌아보면서 순찰 활동 추진(‘건강걷기운동’의 일석이조의 효과)▲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며느리들을 대상으로 관심 유도와 함께 우수 외국인에게 상품과 상장을 시상 추진 ▲지역신문(장흥신문),목포MBC방송(09. 3. 24. 18:30 방송), 호남방송(09. 03. 24. 19:00 방송) 등 언론매체 홍보 보도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활발히 본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활동 성과 장흥군지부는 지난 1월 9일, 공식적으로 국민운동본부 장흥군 지부 발족식을 갖기에 이르렀고, 이후 보다 후원단체들의 협조 체제 를 구축하며 본 운동을 전 군민운동으로 펼쳐오고 있다.


"앞으로도 어린이 안전지킴이 운동 뿐 아니라 노인자살예방, 자녀 갖기 운동, 사회 도덕성 회복 운동 등 종합적인 사업을 추진, 노인회 각 읍면 분회 회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평환 지부장의 말이었다.

■농민ㆍ농촌 운동가 출신인 김평환씨

대한 노인회 장흥지부장이며, 국민운동본부 장흥지부 대표인 김평환씨.
올해 나이 77세. 여생을 편히 쉴 만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역사회에서 구부정한 허리를 고추세우며 역동적으로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는 수범적인 노익장의 한 사람이다.


전남대학교 농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 57년도에 장흥군농촌지도소(현 농업기술센터)에 근무하면서 농촌, 농업과 질긴 인연을 맺는다.
당시 농촌지도소 직원 중에 장흥출신으로서는 김회장 혼자였을 정도로 사실상 농촌지도소 근무는 기피대상이었지만, 고향의 부모님(父 金美植. 1907-1978. 용산면 초대면장, 초대 용산면의원 및 용산면의회 의장 역임)을 모셔야 하는 그로서 농촌지도소 근무를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농촌과의 인연은 그로 하여금 평생토록 농민ㆍ농촌 운동가로서 길을 걷게 한다. 지역사회 봉사와 농촌 운동에 평생을 바쳤던 선친으로부터 영향을 입은 바 크다고 한다.


선친 김미식 선생은 1933년에 일어난 독립만세 사건이기도 한 일명 ‘전남농민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독립 운동가이기도 했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김두환(金斗煥)은 대구형무소에서 3년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함께 이 사건에 동참한 김미식 선생은 목포 형무소에서 1년형을 살다고 고문의 여독으로 병보석으로 출감했다(후에 목포형무소가 불타면서 수감자 내용 등의 자료도 불타 버려 독립 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김미식 선생은 또 5.16 이후 정부의 간척지 사업추진에 동참, 자신의 소유 잡종지(염밭 등) 4정보를 마을에 기증하고, 이곳에 간척지 사업을 추진 23㏊(관계보 70m, 용수로 1500m 등)를 조성해 마을 농가 등에 무상 분배한 바 있으며, 덕암마을과 풍길마을간의 콘크리트 육교를 건립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특히 화술에 남다른 재질을 보였던 김평환 회장은 농촌지도소에 근무하는 중에 농촌마을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농민들에게 선진농법과 의식교육을 하는 일에 주력했다. 특히 50대 이후부터는 지역사회 봉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한다. 그 일례가 장흥중동창회장, 재향군인회 자문위원, 농촌지도자용산면 회장, 장흥교도소 및 새마을 정신교육 강사 역임 등이 그것이다.

■50대 이후 지역사회 봉사에 적극 참여

농촌지도소를 퇴직한 때는 그의 나이 58세가 되던 90년. 퇴직 이후 김 회장은 퇴직 이전부터 참여했던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농촌지도자 장흥군 회장, 장흥군 농업단체협의회장, 중국ㆍ일본ㆍ러시아 연해주ㆍ대만ㆍ호주ㆍ뉴질랜드 해외농업 연수, 장흥군 농업발전심의위원 등의 역임은 물론 민방위 장흥군위촉강사, 농촌지도자 중앙회 강사 등 퇴직 이후에도 그는 지역사회와 농촌을 위한 봉사활동 및 교육운동에 더욱 활발히 참여한다.


이처럼 지역사회 봉사활동에서 적극적인 참여의 경험으로 그는 농촌관련 활동뿐만 아니라, 장흥라이온스 클럽회장, 장흥문화원 이사, 장흥새마을지회 이사, 장흥군 제2건국추진위원장, 장흥군 유도회 부회장, 푸른 장흥군 협회 이사 등 다방면에서의 지역원로서 역할을 수행해 나왔다.


그의 이러한 활발한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은 지난 96년 그에게 지역사회 봉사분야에서 ‘군민의 상’ 수상의 영광을 안기게 해주기도 했으며, 각 분야에서 수많은 수상과 표창을 안기게 해주었다.
한 때, 주위의 권에 못 이겨 지자체 기초의원에 출마,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던 김회장은 5,60대 열정시대를 지나, 이제는 완연한 노인세대로서 그러나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며 노인회 활동에 주력면서 여생을 지역사회 봉사에 투신해 가고 있다.

■70대 후반-이젠 노인회 활동에

김회장의 노인회와의 인연은 지도소 퇴직 이후인 그의 60세 때, 덕암 2구마을에 문중 공청을 임대해 노인당으로 개설해주면서부터이다.


당시 노인회원으로서 자격은 없는 그였지만, 당시 용산면소재지에 노인당 하나만 있어, 면소재지와 원거리에 있는 예전의 남하면에 속해 있던 포곡 계산 차동 덕암2구 풍길 등 8개 부락의 노인들에게 ‘남하 노인당’을 개설해 주기 위해 영광김씨 문중의 공청을 임대해 노인당으로 개설해 주고 ‘남하 노인회’를 결성해 준 일이 있었다.

그 이후 65세가 되면서 노인회원이 2년간 남하 노인당 당주를 맡기도 하면서 노인회 활동에 본격 참여하기 시작한 김 회장은 지난 2006년에 장흥군노인회 부회장을 역임한 이후 지난해부터 대한노인회 장흥지회장을 역임해 오고 있다.


노인회장이 된 이후 김 회장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노인회관 조성, 독고노인 지원사업,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여성 돕기 운동이다.


“노인회관 조성, 독거노인 돕기 및 외국인 여성지원 운동은 안재곤 회장 시절에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느꼈던 일입니다.
지금의 노인회관은 건물도 노후화 돼 있고 노인들이 사용하기에 많은 불편이 따릅니다. 해서 노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새로운 노인회관 조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명흠 군수님과도 애기해서 긍정적인 허락을 받아놓은 상태인데, 아직 경제가 어렵고 내년에 선거가 있는등 여러 유동적인 환경으로 예산확보까지는 못했습니다. 선거 이후에는 곧 가시화되리라 생각합니다만, 계속 노력해서 제 임기 중에 필히 착공이라도 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김 회장의 독거노인 돕기는 지난 해 4월 지회장 취임 이후부터 시작되어 온 사업이다.
그는 매월 1회씩 독거노인을 방문해 자신의 차로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 목욕을 시키고 선물등을 전달해주며 위로해 오고 있다.


그리고 외국인 여성 돕기운동은 매월 1회씩 1가정씩 선정해 식로품이며 어린이 장남감이며, 이동용 도서 등을 전달하며 격려해 오고 있다.
특히 독거노인돕기와 외국인여성 지원 사업에 많은 사비를 들여 추진해 오고 있다. “평소에도 자주 회원들에게 강조합니다.

우리 노인들이 존경받으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열어야 한다고. 노인 세대가 젊은이로부터 괄시받는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노인들이 지역의 원로로서 지역사회의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이 있다면, 죽으면 그만인데, 왜 움켜쥐고만 있습니까.


독거노인이나 외국인 여성, 청소년을 돕는 운동에는 돈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이나 정부의 지원만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회원들 스스로가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특히 외국인 여성들을 위한 지원은 절실합니다. 이 운동은 비록 노인회장을 그만둔 이후라도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할 생각입니다.”
김평환 노인회장은 이제 자신의 인생의 목표는, 사는 날까지 지역을 위한 봉사이고 특히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 여성들을 지원하고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선욱기자

<김평환 지회장 프로필>
▲53. 전남농대졸업 ▲57. 장흥군농촌지도소 근무 ▲90. 농촌지도소 퇴직 ▲84. 장흥중 동창회장 ▲84. 장흥교도소 새마을정신교육 강사 ▲86. 장흥군재향군인회자문위원 ▲89. 농촌지도자 용산면회장 ▲90. 장흥향교 장의 ▲92. 장흥라이온스클럽회장 ▲93. 농촌지도자 장흥군회장
▲94. 민방위 장흥군위촉강사 ▲94. 중국농업해외연수/96. 일본해외농업연수/2005. 대만 농업해외연수/06. 호주,뉴질랜드 농업해외연수 ▲95. 장흥문화원 이사(현) ▲95. 장흥군농업발전심의위원 ▲97. 장흥군농업단체협의회장 ▲98. 푸른장흥협회 이사 ▲99. 장흥군사회단체협의회 부회장 ▲2000. 농촌지도자중앙회 강사 ▲2000. 장흥군제2건국위원장 ▲05. 장흥군유도회부회장 ▲06. 대한노인회장흥군지회부회장 ▲08. 대한노인회장흥군지회장(현) ■수상=▲65. 장흥군수 ▲71. 전남농촌진흥원장 ▲71. 장흥군농촌진흥회장(농민의상) ▲71. 전남지사(2회) ▲75. 내무부장관 ▲76. 농촌진흥청장 ▲84. 농수산부장관 ▲88. 국제라이온스협회 30P지구총제 ▲90. 대통령 표창 ▲93. 라이온스클럽 총재 ▲93. 라이온스 협회 한국복합지구의장 상 ▲94. 농촌진흥청장 상 ▲96. 군민의상(지역사회봉사분야) ▲98. 농촌지도자 중앙회장상 ▲98. 농정부장관 ▲2000. 농촌지도자중앙회장상 ▲2000. 석탑산업포장 ▲2009. 대한노인회 중앙회장상 ▲2009. 보건복지가족부장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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