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녀석은 천하를 호령했다. 초원을 쏜살같이 내달리면, 먹잇감은 금세 녀석의 이빨에 박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축 늘어진 채 땅바닥에 내던져졌다 어떤 놈도 그 앞에 감히 얼씬거리지 못했다.


세상은 온통 녀석의 독무대였다. 세월이 흘렀다. 구름처럼, 강물처럼 그렇게 흘렀다. 여전히 천둥 번개 무섭게 내리치고 초원은 한없이 광활했으나 녀석은 사뭇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뼈저린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탄력 좋은 다리엔 힘이 빠졌고, 뾰족한 발톱은 무뎌졌다. 형형한 눈동자도 희미해졌다. 더욱 치명적으로 이빨마저 예전같지 않았다


그렇다. 녀석의 초강력 무기는 날카롭고 강인한 이빨이었다. 단단한 잇몸 위아래로 마주뻗은 네 개의 송곳니는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보기만 해도 벌벌 떨릴 만큼 섬뜩한 공포를 내뿜었다. 녀석이 아가리를 벌리는 순간 지옥의 문은 활짝 열렸고, 그 문이 닫히자 마자 피바람 부는 파티는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시간의 흐름 속에 이빨은 닳고, 깨지고, 빠져버렸다. 전가의 보도를 상실한 녀석은 권력과 권위를 동시에 잃었다. 벌린 입은 보기조차 흉했다. 연약한 가젤마저 이젠 녀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자 무리에서도 쫓겨났다. 한때의 영화는 사라지고 더이상 없다.


휑한 벌판에 고요가 가득하다. 햇볕은 불화살처럼 뜨겁다.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뒷모습이 고독하다 못해 처량하다. 전설은 흘러갔고, 현실은 가파르다.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녀석은 세상의 끝이 올 때까지 초원을 헤매며 사냥해야 한다. 그리고 먹잇감을 구하지 못하는 날, 경외의 운명 앞에 순응해야 한다.


김광근 씨의 사진 작품을 대하는 마음은 쓸쓸함을 넘어 고통스럽다. 초점 흐린 눈빛을 보내는 수사자의 굶주린 뱃가죽 때문일까. 송곳니를 잃어버린 채 애써 호기를 부리는 모습이 차라리 애처롭다. 윤기 없는 얼굴에서 권력 잃은 인간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는 건 그저 우연일까.


김씨는 오지 사진작가다. 1989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그중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다섯 달 동안은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지역을 훑었다. 국내 작가론 보기 드물게 그는 아프리카 동물사진을 주로 찍어왔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하카나카' 사진전. 김씨는 오카방고에서 만났던 사자들의 모습을 애조띤 색채로 담아내 소개하고 있다. '하카나카'란 오카방고의 사자 서식처로, 보통 그 지역에 사는 사자 무리를 일컫는다.
오카방고에 체류하면서 사자 무리를 생생하게 관찰하고 촬영한 건 고작 다섯 번밖에 안된다. 그만큼 사자 구경이 힘들다는 얘기다. 생태환경이 흔들리면서 개체수도 크게 줄었다.


텔레비전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는 사자가 먹이를 사냥하고 포식하는 장면을 주로 보여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사자가 늘 풍부한 먹잇감을 탐닉하는 걸로 착각한다. 하지만 하루 평균 40킬로미터를 걷고 달려도 만만한 먹이 하나 발견하기 힘들다. 생존의 사투는 그래서 더 치열하다.
더욱 처절한 광경은 늙고 굶주린 사자다. 어느 누구도 범접지 못했던 이빨을 상실한 뒤의 모습이란 차라리 측은하다. 늙고 굶으면 백수의 제왕인 사자도 별수없나 보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주먹거리도 안되던 하이에나 무리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게 어찌 사자에 그칠까. 삶이 무상하기는 사자나 사람이나 매한가지인 것 같다.


문명에 쫓기고 시간에 쫓기는 사자 무리는 현재 도태와 멸종의 길을 빠르게 걷고 있다. 김씨는 30년 뒤면 오카방고에서도 더이상 사자 무리를 구경하기 힘들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주된 먹잇감인 물소마저 격감하는 추세여서다. 생태 시계가 울리는 경고음은 그만큼 절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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