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소치는 목동이 되자


3월은 오는 봄이고 4월은 머무는 봄이라고 말했던가?
또 축소하여 한 해를 하루로 치면 4월은 마치 오전 중 세참 때라 출출한 김에 음식 맛도 꿀맛이렸다.


그렇듯 이맘때면 우리 농촌사람들은 겨우내 언 땅을 갈아 종자를 뿌리고 물꼬를 쳐가며 양지바른 곳에서 봄나물 안주에다 컬컬한 농주 한사발의 인정에 도란도란 이웃끼리 행복을 속삭이며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문득 저마다 옹골찬 삶의 일터를 찾아 고독한 출향의 생활 속에서 오늘도 번민하고 있을 우리 향우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립고 가여워진다.


여기서 괴짜시인 이외수의 고향에 대한 명상은 우리를 실망케 한다
“아마 때로는 간절히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고향에 돌아가면 무엇하리, 다시 고향에 돌아간들 무엇하리,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낯선 사람들이 모두 차지한 땅, 어린가슴 설레던 일들도 무참히 깨달아져서 소원도 믿음도 하나없는데 빌어먹을 누군들 고향이 따로 있을까!
고향 / 그대가 서있는 그 자리, 친구 / 그대 곁에 서있는 사람, 그대가 눕는 자리가 고향이고 그대가 눈뜨는 자리가 고향인 것을...”


작가는 어쩌면 우리가 청명한 목소리로 한나절을 보내던 그 빈터에는 생경한 건물들이 들어서서 소슬바람을 가로막고 이제는 나뭇가지 위 그 흔한 참새 떼도, 돌담길 징검다리로 쉽게 볼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아쉬움을 노래했으리라.


그러나 진정한 고향이 어찌 하나뿐인지, 둘, 셋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 고향은 아직도 종갓집 서까래와 고목나무며 헐어진 돌담장 등이 다소 초췌해진 형태이긴 하나, 지난 세월의 전설을 머금은 채 떠나간 님들의 훈훈했던 채취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장흥군 향우님들이여! 고달플 때면 고향땅을 향해 고개를 돌려 달라.


어렸을 적 소꿉친구와 뒷동산, 시냇가 가재 잡던 추억이 와락 가슴에 녹아 때론 고향으로 돌아갈까 망설여 질 때도 있을 것이외다.
사실 귀향의 성공담은 우리들 주변에 수 없이 많다. 어차피 죽은 후 고향땅 깊숙한 곳에 묻힐 내 영혼, 삶의 열정과 고뇌를 고향에 죄다 쏟아 붓고 떠나는 것이 축복된 삶이 아닐런지. 그래서 혹여 특별한 일 없이 방황하는 향우가 있다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귀향하여 소치는 목동이 되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내 고향 장흥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산업단지와 농공단지가 터를 닦아놓고 벌써 16개 기업들과 2,600여억원의 투자협약을 체결하였는가 하면, 우드랜드와 로하스타운 등 미래 웰빙 소재들이 조성되고 있으며, 특히 정남진토요시장 생약초한방특구의 야심찬 프로그램이 개화시기에 있다.


또 고향엔 봄 가을 철쭉과 억새풀이 춤추고, 남해바다 고깃배와 섬돌을 바라보는 언덕에 할미꽃의 자장가가 있고, 세익스피어의 은빛 펜촉의 재치가 번뜩이는 문학의 혈맥이 천관에 뻗어있는가 하면, 작렬하는 태양아래 첨벙첨벙 물축제 신화의 여신과도 해마다 교감한다.


생각하면 그까짓 도시의 짠돌이들 틈에서 해답 없는 숙제를 찾아 우리의 고상한 넋이 전전긍긍하며 굳이 천대받을 필요가 없다 하겠다.
고향은 돌아오는 향우들을 따뜻하게 반겨줄 것이다. 귀향에 따른 재정적 지원과 인간적 보호도 배려한다.


이만하면, 벼슬마저 팽개친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고요한 귀향의 희망이 움틀거림을 어쩌랴? 고향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이미 지난일은 탓하며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보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무릎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구름은 산골짜기를 돌아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돌아 왔노라!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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