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은 대덕읍과 관산읍 경례에 위치한 해발 723m의 산으로 옛날에는 지재산, 천풍산이라 했으며 호남의 5대 명산중 하나이기도 하다.


천관산의 역사와 그 전설을 살펴보면 가끔 흰 연기가 구룡봉 주위로 타오르고 있어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동국여지승람)하여 한때는 신산이라 부르기도 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신라시대 명장인 김유신 장군이 속알머리 없을때 사랑하고 사모했던 ‘그녀’ 천관녀가 이곳 천관산에 숨어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이야기 거리와 천관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내려다 보이는 장흥의 남부지역의 경관을 한눈에 보기 위해 탑산사를 경유 연대봉까지 걸으면서 보고 느꼈던 대로 적어 보기로 한다.
그날따라 날씨는 청명하고 마음이 상쾌해 즐겁기만 했다. 대덕읍 연지리 마을을 경유 탑산사에 도착하면 천관산 문학공원과 문학관을 볼 수 있다.




문학인들의 서린 구절구절이 마음을 끌어 안긴다.
탑산사에 도착하여 등산로를 결정하는데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하는데 천관산의 옛이야기들이 산자락처럼 쌓였지만 이번에는 닭봉 능선을 따라 올라가기로 결정하고 서서히 걸음을 옮기는데 날씨는 청명한데 천관산의 기암괴석의 틈 사이에는 짙은 안개가 가득 끼어 한 폭의 병풍을 연상케 했다. 아침 일찍 등산하기에는 최상의 일품이기도 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가니 일찍 찾아온 기운에 뾰쪽이는 잎사이에 쓰레기 봉다리가 기분이 좋을리 만무하다. 닭봉바위 상봉에 앉아 바라보니 곰솔과 해송 뽀쪽뽀쪽한 단풍나무가 한때 어우러져 환상의 수를 놓았다. 그 사이로 우뚝 서 있는 기암괴석은 ‘무애’ 그리 애타는지 쳐다보며 울부짖는 듯하다.


아침 일찍 산행을 하는 탓인지 그날따라 인기척하나 없는 조용한 천관산 이었다. 아스라이 불어오는 북풍에 한쪽 숲속에는 아웅아웅 우는 소리 짹짹 울부짖은 소리가 발걸음을 재촉케했고 당초의 목적이 연대봉이라 곧바로 올라 연대봉을 향해 내 달린다.


아~ 운명은 재천이라 하더니 그 곱고 고왔던 하얀 억새꽃은 때가 아닌지 다 떨어지고 찾아 볼 수 없었고 깡댕이만 우뚝 서 북풍에 휘날린다. 감로천의 약수 한잔이 없었다면 스산한 그 기운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연대봉은 천관산의 최고의 상봉으로 옛날에는 옥정봉이라 불렀다 하며 고려 의종왕 서기 1160년대 봉화대를 설치하여 통신 수단으로 이용하였고 그 후 봉수봉 또는 연대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연대봉에 앉아 사방을 내려다보니 천하가 내 것이고 고흥의 팔영산, 월출산이 보인다. 제주도 한라산에 보인다고 하지만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고 득량만의 파도 위의 절경은 마침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장흥의 유일한 섬이었던 노력도가 연륙이 되었지만 확고한 개발이 되지 않은 탓인지 수즙은 듯한 그대로 누워 있다. 정남진 상징탑이 서 있는 삼산 간척지 뚝에는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인지는 몰라도 개미 새끼처럼 군데군데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노력도를 경유한 채류형 레저스포츠, 마스터 한곳을 개발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게 한다.
연대봉에서 구룡봉의 능선을 따라 돌아가면 부부봉이 있다. 얼마나 그립고 사랑스러웠는지 떨어질 줄 모르고 붙어만 있으니 이 부부의 정겨움 또한 인간의 산교육지이고 사랑의 밀실을 한 수 가르쳐 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산봉우리를 경유하여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기만 하였고 돌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용이 앉자마자 날아 간다는 전설을 의미하듯이 구룡봉의 바위에는 용 발자국 처럼 느끼게 하는 자국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골짜기를 굽이 내려다보면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가 떨려 내려다 볼 수가 없으니 과연 용이 ‘점프’ 했던 곳으로 부족함이 없다.
그 시간에야 천관산을 찾은 등산객들을 한 두 사람 만나게 되었고 연대봉을 경유하여 구룡봉에 도착하면 허기라도 달래듯 먹거리를 찾게 되고 생각난다.


그곳에 모여 앉아 이집 저집 도시락을 펼쳐놓으면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요 특유의 별미의 맛을 맛 볼 수 있고 약속이라도 하듯 서로간의 인사는 물론 여러 가지 이야기 보따리들이 솔솔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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