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화도 없을 것이다.


특히 이야기 시작과 함께 걸리버가 처음 표류하는 소인국과 두 번째 여행지인 대인국 이야기는 너무나 재미있다. 정말 작가가 소인국과 대인국을 경험하고 쓴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개구쟁이 중에는 소인국을 찾아 왕이 되겠다며 가출 소동을 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문득 대인국과 소인국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바로 발명의 세계가 세상을 줄이기도 혹은 늘리기도 하는 아주 매력적인 신비의 왕국이었던 것이다. 때로는 걸리버의 여행담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숨어 있었다.


'더하기 빼기’ 기법과 함께 발명에서 흔히 쓰이는 기술이 바로 ‘늘이기, 줄이기’다. ‘늘이기, 줄이기’는 아이디어 창출이 아주 간단하면서도 그 효과는 아주 기막힌 방법이다. 특히 기업들이 신제품 개발에 자주 이용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우선 늘이기 예를 보자. 대형 할인매장도 늘이기의 대표적인 예다.
웬만한 대형 할인점의 규모는 동네 구멍가게의 수백배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한다. 커다란 건물 하나를 통째로 가게로 만들어 놓은 셈인데, 1백원짜리 껌부터 수백만 원짜리 골프채에 이르기까지 취급하지 않는 물건이 없을 정도다.


판매하는 제품도 동네 수퍼와 달리 대형포장 제품을 중심으로 진열되어 있다. 맥주나 음료수도 6개포장을 기본으로 판매하고, 과자도 보통 포장의 2~3배 용량만 취급한다. 마치 걸리버의 대인국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이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추세에 발맞춘 늘이기 전략이다. 맞벌이 부부는 예전처럼 가사에 전념하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쇼핑을 하거나 장을 보는데 투자할 시간도 적다. 따라서 한 곳에서 완벽한 장보기를 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일. 게다가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 꼴로 한번에 장을 보기 때문에 구입하는 양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생활 패턴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 바로 대형 할인매장인 것이다.
늘이기 전략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곳은 가전제품시장. 세탁기나 냉장고 등 가장 기본적인 가전제품은 핵가족 시대에도 꾸준히 대형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다. 여성들이 대형 가전제품에서 은근히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집과 비교한다는 점을 교묘히 공략해, 좀 더 크고 화려한 제품을 앞다퉈 출시하는 것이다.


또한 TV의 경우 대형화 고급화 추세가 뚜렷하다. 영상문화가 발달하면서 가정에서도 영화관 수준의 화질을 즐기려는 욕구가 대형TV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크기 때문에 사랑 받는 것들은 이밖에도 많다.
한 사진 인화 전문점은 경쟁전략의 하나로 필름 하나를 맡기는 손님에게 사진 한 장을 크게 확대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값비싼 자동인화기계를 두고 바로바로 사진을 인화해주는 사진전문점이 생겨나면서 경영에 타격을 입자 고안해낸 아이디어였다.


누구나 작은 사진보다 큰 사진을 좋아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인물이 이쁘게 찍혔거나 좋은 풍경사진을 골라서 보통보다 두 배 이상 확대한 것뿐이었는데, 손님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부러 멀리서부터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전략은 다른 사진인화 전문점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커져서 좋은 것들이 있다면 반대로 작아져서 좋은 것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핸드폰. 처음에 무전기만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오히려 큰 골동품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처음엔 손바닥에 가져지는 크기가 나오더니, 이젠 아예 주머니에 쏙 넣거나 목걸이로 걸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얇은 제품이 천지다. 어떤 제품은 너무 작아서 ‘깍두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핸드폰의 소형화 추세는 전 세계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가 유독 심하다고 한다. 이는 핸드폰의 사용 층이 학생으로까지 넓게 퍼져 나간 것과 관계가 있다.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에게는 크고 묵직한 제품보다는 손 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스타일의 제품을 선호하는 것이다.


또한 체구의 차이도 한 원인이다. 유럽인이나 미국인은 손이 크고, 체구도 크기 때문에 작은 물건을 다루는데 서투르다. 실제로 서양 사람들은 우리의 작은 핸드폰의 버튼을 조작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한다. 반대로 우리 동양인은 손이 섬세하고 체구가 작기 때문에 큰 전화기는 오히려 짐이 된다. 우리 제품이 중국이나 동남아 시장에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핸드폰 생산업체들은 바로 이런 시장 특성을 잘 분석해 세계에서 유례없는 소형 단말기를 생산한 것이다.


‘작게 또 작게’를 외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분야는 컴퓨터이다. 최초의 컴퓨터의 크기는 가로 3미터 세로 3미터에 무게만도 무려 30톤이 나가는 거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애니악 보다 더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작은 공책 크기 만하게 변했다. 30톤이 가방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변신한 것이다. 애니악에 비하며 지금의 노트북은 소인국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컴퓨터 격인 PDA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얼마 후엔 손목시계 만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예고도 나오고 있다.


줄이기 왕국은 최근에는 ‘나노’세계까지 내려가면서 기술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10의 마이너스 9승(10-9m)를 의미하는 ‘나노’는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 사람들이 표류해서 그보다 더 작은 소인국에 가고, 또 그 소인국 사람이 더 작은 소인국에 가는 것을 한 열 번쯤 반복할 때 볼 수 있는 세계다.


21세기의 기술이 바로 이런 미지의 영역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쌀도 1kg까지 소포장이 등장했는가 하면, 반차도 몇십그램 씩 파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여행객을 위해 자은 비누와 치약을 특별히 생산 판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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