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욱은 ‘천생 글쟁이’ 라고 모두들 소곤거렸다.


유년시절 문학에 심취하면서 접어든 그는, 잘 나가던 중앙지 신문사를 훌훌 털어버린 채 그의 고향 남쪽 나라, 일렁이는 파도가 앞 바다에 넘실되고, 뒤로는 삼비산이 그를 안기 위해서일까. 그는 어느 날 고향 장흥에서 먼 곳의 그리움을 멀리한 채 숙명처럼 고행의 뼈저림을 몸소 받아들이기 위해서 돌아왔으리라.


팔자소관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무책임한 말 같지만, 그는 그날부터 몸뚱어리 반쪽들을 황량한 벌판 같은 먼 서울에 남겨 놓은 채, 쉬이 남들이 말하듯 ‘돈도 되지 않은 지역신문’에 몸 바치면서 그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처절한 만남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세월이 어느덧 10년이라는 긴 날을 마음 달력에 품고 살면서, 이제사 내 생의 평생 반려자를 내 곁에 두고 싶을 즈음, 그는 억겁의 죄스러움을 자신의 육신에 물들여놓고서야 아내를 천상의 나라로 배웅하였다.

김선욱 시인은 시집의 서문에서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고 또 되돌아 보니 그동안 그녀에게 따뜻한 햇살, 싱그런 초원, 벌 나비 잉잉대는 화사한 화원으로 한 번도 데려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앞선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앞서 걷지도, 쉽게 정상에 오르지도 못한 걸음이었다. 매번 뒤처지고, 남들처럼 쉬운 길을 선택하지도 못했으며, 선택한 길마저도 잘 걷지 못한다고 늘 타박을 들으며 동행해 온 길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부끄러움도 아내에겐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 때문이다. //또 한참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 詩 공부를 하겠다는 내 의지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지길 바랄뿐이다.// 투박하게 거친 글 그대로, 詩 같지도 않고 낙서라 생각하며 써왔던 것들을, 주섬주섬 모아 詩集이라는 이름으로 묶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절망 속에 아파하고 있을 아내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고 하였다.


시인이면서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인 성기조 씨는 金 시인의 시집 평설에서 “그의 시를 읽으면 생각이 곧고 강직하다. 그리고 표현이 알맞아 군더더기가 없다. 넓고 큰 남쪽바다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시를 구성하는 태도가 호쾌하고 단단하다. //김선욱의 시를 읽으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고 있다. 물론 시인이기 때문에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사랑의 깊이와 얕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주만물을 통틀어 사랑하고 있다. 아무리 시인이라 해도 만물을 고루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손가락도 길고 짧음이 있듯, 사랑에도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선욱은 이 모든 것들을 같은 무게, 같은 깊이로 사랑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랑은 성격에 편견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보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선욱의 시를 읽으면서 특별하게 발견된 것은 그의 아내에 대한 절실한 사랑이다. 누구나 인간이면 아내에 대한 사랑이 특별나고 유별나자 않을 수 없지만 김선욱에게 있어서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더 크고, 더 넓게 깔려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길을 가다가/차창 밖으로 하늘을 우러르다가/풍성한 식탁에서 밥 한 술 뜨다가/불현 듯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불현 듯 울컥 목이 메인다//그때마다 떠오른 당신 얼굴/내 삶의 동기가 되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됐던/그리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잊을 수 없을 이름으로 남아 있을 당신//이제는 당신을 생각만 하면 눈물이 솟는다/아니, 생각하지 않아도 무시로/당신은 불현 듯 눈물로 찾아온다//이제 당신은 내 서러운 눈물의 근원이다(시 '내 눈물의 근원- 눈물1' 전문)


이 시를 전부 인용하는 까닭은 김선욱의 아내에 대한 진정성이 완벽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뭉쿨한 가슴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막막했다. …중략…


한 사람의 시인이 그의 가족과 가족사에 되비친 여러 가지 고통스런 사실들을 체계 있게 써내기는 무척 힘든 일인데, 그런 사실을 극복하고 잔잔한 필체로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내는 일은 참으로 힘들다. 그가 쓴 시는 한편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담고 있어 사랑과 고통, 그리고 고통에 대한 치유법이 함께 씌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김선욱은 아주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시인이라고 느꼈다. 사람의 삶에서 겪어내게 될 사랑과 고통에 대해서 이만큼 확실하게 써 낼 수 있는 시인이 드물다는 점에서…”라고 평하고 있다.


화려함을 뽐내던 그 꽃들은 무정한 세월에 꽃잎을 떨치면서 앙상한 나뭇가지만이 우리들 눈앞에 서 있을 때서야, 우리는 그러한 찬란했던 꽃 봉우리를 그리워한다.


아스라한 달빛이 내 눈언저리에 있을 때는 섬광 번뜩이는 태양이 그리웠지만, 자욱한 구름에 가려 희미해진 세상을 만나고 나서야 그 영롱한 달빛 소중함을 알 수 있듯이, 金시인은 그렇게 속절없이 먼저 간 아내를 위해서 이 시집을 바치고자 하였다.


2007년 10월, 간암말기라는 믿기지 않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그동안 마음에만 품고 있었던 아내에 대한 애절한 시문들을 그대 생전에 안겨주면서 시간이 허락 하는 대로 낭송 해주고 싶었지만, 그 시집이 다 만들기 전에 그 아내를 유명을 달리하였다.
1집에서는 생전에 아내의 그리움을, 2집에서는 먼저 보내고 난 회한의 눈물들을 가슴 뭉클하게 써 내보였다.


김선욱 시인은, ▲장흥군 안양면 신촌 출생(1952년)으로 ▲계간 ‘민족과문화’제1회 민족과 문학 문학대상 작품모집 중편소설'청상의 귀향’당선 ▲1998, ‘문예운동’겨울호 詩 신인추천(‘사랑의 환희’외 4편, 2008.12)을 거쳐 문단에 데뷔했다. (주)일화 홍보실 社報팀장(81~87), 도서출판21기획대표(88~90), 종교신문 편집-취재부장(91~96), 장흥신문사장(97~01)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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