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느낄 때면 나는 하늘을 보곤 한다. 하늘이 희망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수런거리는 검은 구름장들이 하늘을 가리고 흰 눈을 쏟아 붓는다. 꽃 같은 눈송이들이 대지를 덮는다. 지난해 우리들의 귀에는 절망의 말들이 많이 들려왔었다.


농촌에서의 희망찾기를 고민하던 나는 산간지대인 전남 곡성 목사동면에서 오랫동안 배 농사를 지어온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리한 그 친구는 무농약으로 배를 생산해 쏠쏠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몇해 전 태풍이 불어 나주지방의 배 농사가 다 망했을 때도 “내가 사는 곳은 산골이라 태풍이 아무리 불어도 끄떡없다”고 했던 친구였다. 과잉생산으로 배값이 폭락해 야단들일 때도 “나는 미국으로 수출하기 때문에 걱정없다”던 친구였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다짜고짜로 “제2의 IMF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다 뭐다 시끄러워도 미국으로 배를 수출하는 자네는 상관없지?” 하고 물었다. 한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친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이고 시방 영 죽을 지경이여. 미국 바이어들이 ‘경기가 나빠지니까 사람들이 배를 먹으려 들지 않는다’면서 한상자에 5,000원씩 무조건 깎아달라고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말만 해놓고는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네.”


친구는 자신이 너무 안주한 것 같다고 반성하면서 전자상거래를 실시하고 주말과수원도 유치하는 등 새로운 소득원을 찾을 거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경기침체 속에서도 나름대로 살길을 찾는 친구의 노력이 눈물겨워 전화를 끊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데 문득 우리 마을의 젊은 농군 김군이 생각났다. 농고 출신으로 30대 초반인 그는 소 60여마리를 키우며 아내와 오순도순 살고 있다. 나는 산책길에 그의 축사에 들러 소들을 구경하곤 한다. 마침 올해가 소의 해고 해서 김군을 찾아가 물었다.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소 키우는 사람들 다 망했다고 난리인데 자네는 어떤가?”
“대체사료를 이용하는 저의 경우는 괜찮습니다. 배합사료 먹여서는 이길 수 없어요. 배합사료에 의존해서는 도산합니다. 지난 한해 동안 배합사료값이 여섯번이나 올라 사료값만 2,800만원이 들어갔으니까요. 그래서 지난가을에 대체사료로 바꿨습니다. 느타리버섯·당밀·겨·옥수숫대·발효효소 따위가 주성분인데 두달 먹여보니까 효과가 아주 좋습니다. 비용도 60% 정도 절감되고요. 그리고 올해 조사료로 쓰기 위해 라이그라스 씨앗을 1만3,000평에 뿌렸습니다. 보리도 좀 심고요.”
“자네가 키운 소의 판로나 값은 어떤가?”
“장흥 토요시장 한우전문점에 내는데 1㎏당 8,000원씩 한마리에 470만원 정도 받습니다. 장흥 토요시장 한우고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잘 팔립니다.”
“미국산 쇠고기뿐 아니라 브라질산 쇠고기까지 들어올 판인데 그래도 전망이 있는가?”
“활로를 찾아 부단히 노력하면 됩니다. 라이그라스를 직접 심어 조사료로 활용하고, 보리를 풋보리일 때 베어 말렸다가 살짝 띄워 먹이는 방법으로 양질의 소를 길러내면 희망이 있습니다.”


김군의 명쾌하면서도 자신에 찬 대답을 듣고 돌아오며 다시 하늘을 본다. 역시 신세대 농업인은 다르구나. 저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와 열정이 희망이구나. 먹장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흰 눈을 뿌린다. 꽃 같은 눈송이들이 대지를 덮는다. 새 아침이면 저 눈이 멎고 밝은 해가 다시 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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