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가 뜻 깊게 맞이한 광복 60주년을 맞아 돌이켜보면, 칠순을 넘긴 어르신 세대가 황혼의 길목에 서서 다시 돌아오지 않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한순간도 없이 미국의 원조물자와 풋보리로 연명한 굶주림을 해결하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길에 땀과 눈물이 얼룩진 바탕이 있었기에 오늘의 빠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또 오늘의 젊은 세대가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것도, 또한 동방예의지국이란 칭호를 받을만큼 이웃간의 인정이 넘치고 인간의 근본정신인 인성이 순박하고 위기를 당하였을 때 단일민족으로서 온 민족이 결집하는 민족혼을 이어왔던 것도 다 지금의 노인세대의 공로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구문명의 무분별한 유입과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자본주의의 패습이 오염되기 시작하면서 인정 넘친 옛 문화와 아름다운 전통은 다 사라져버렸다. 채소 한 포기라도 팔려고 팔순 넘긴 할머니가 재래시장 모퉁이에서 차가운 손을 불어가며 돈을 만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라.


도시에서는 고층아파트 생활로 바꾸어지면서 수년을 이웃간에도 수년간 인사 한 마디 없이, 이웃간에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모르면서 외면하고 사는 비둘기 인생이 아닌가.
우리 인간은 서로 각자 다른 직업인으로서 서로 돕고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건만 우리의 전통문화인 대가족 제도의 해체와 철저한 개인주의의 팽배로 이처럼 이웃간에 인정이 메마른 사회로 변하여 버렸다.
최근 온 세계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공포에 휩싸여 이제 더 이상 미국의 위기가 아니라 세계의 위기를 만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시대를 맞아,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극복하여야 할 때인 데도 부정부패의 양상은 더 심화되어가고 있다. 고급공무원까지 낀 쌀 직불금 부당 수령문제만 해도 농민들의 가슴을 더 새까맣게 타들어가게 하고 있는 기막힌 일이 아닌가. .
우리 사회는 이러한 몰지각한 사람보다 작은 정이라도 나누어 먹고사는 평범한 사람이 훨씬 많다. 일생동안 삯바느질 하여 모은 자산 10억원을 장학금으로 헌납하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최근 50대 여성교수가 암으로 이승을 떠나면서 모은 자산 10억원을 모교에 장학금으로 헌납하는 등 아직도 우리의 전통인 미풍양속이 살아 숨쉬면서 기둥이 되어 있기에 그나마 우리사회가 쓰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은 똑같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자기가 땀흘린 만큼 의식주만큼은 사람답게 누리고 사는 것이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서울의 변두리 달동네에 가보면, 혼자 살기에 불편한 쪽방에서 자식이 버리고 간 손녀를 데리고 차가운 날씨에 연탄 몇 장이 없어 고통스런 겨울을 나는 준비가 막연한 삶을 살고 팔순의 할머니가 있지만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하룻밤에 상급호텔에서 기백만원을 주고 밤을 보내기도 한다.
또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아무에게나 흉기를 휘둘러 무고한 양민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순간에 행복한 가정이 파탄되어 어린 생명이 꽃피어보지도 못하고 부모와 같이 승용차를 타고 동반 자살하기도 하며, 어린 유치원 여아부터 칠순이 넘는 할머니까지 밤길이나 으슥한 곳을 안심하고 다닐 수 없는 금수보다 못한 행위가 자행되기도 한다. 과연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이 현실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나에게도, 내 가정에도, 언제 닥쳐올 수 있는 불안한 사회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럴수록 인내심을 갖고 생활화되는 봉사의 생활이 요구된다고 아니 할 수 없다.
필자는 선친의 피를 이어받아, 일생을 꾸준하게 사회봉사에 전념하여 왔다. 또 최근에는 노인회에 입문하여 우리의 주변에 자식이 있으면서도 홀로 안타까운 삶을 영위하는 독거노인 돕기를 포함하여 외국인 여성이 우리나라에 시집을 와서 사는 가정이 날로 늘고 있지만, 이들이 편견이나 가정생활에서 소외받지 않도록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들을 일일이 가정방문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해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보람을 갖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여기에도 우리의 인정이 병들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고맙다는 전화 한 통화 받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에게 장학금 기십만원 주어봤자,
그들은 고마운 줄 모른다. 슬프게도 이제는 봉사에 있어서도 ‘자본주의화’ 되어버려서인지 화폐수치 기준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기백만원이라도 봉사해야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로 우리사회가 기형적으로 변하였음을 느끼고, 환멸을 느껴보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점점 선진국처럼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문화가 살아나고 있음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선한 일을 하면 건강에도 좋은 일이니 우리 어르신부터 인정이 메마른 사회를 복원하고 참고 견디면서 자기 힘에 알맞게 봉사문화가 꽃피웠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후세들에게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를 되찾아주는 것으로 우리들의 책무이다. 빈부의 차가 크게 벌어질수록 사회는 불안하다.
그러므로 국민 모두가 상적인 사회가 되지 않으며 같이 공멸한다는 것을 똑바로 인식하고 자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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