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백 형, 삼복의 땡볕 무더위 속에서 무에 그리 바빠 서둘러 떠나십니까. 우리들의 고향 정남진 장흥 산하에 물 축제가 한창인 어제 아침에 당신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감나무 그늘로 가서 뜰에 핀 족두리 꽃, 백일홍 꽃, 연못의 수련꽃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꽃들 위로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을 보면서 당신의 소설 ‘소리의 빛’을 생각했습니다.

작열하는 햇살이 쏟아내는 신화 같은 소리. 장님이 된 여인이 뿜어낸 그 소리로 하여금 선학동에서 학을 날게 하였고, 그럼으로써 형은 그 마을을 신화의 공간으로 형상화시켜 놓았습니다.
이청준 형 지금 가시는 곳이 그 선학동이지요.

형과 나의 인연은 묘합니다. 형이 태어난 곳과 내가 태어난 곳은 직선거리로 간다면 4킬로가 미처 못되는 거리입니다. 우리는 동갑인데 형의 생일이 두 달 빠릅니다. 형은 나보다 더 철이 먼저 들었고, 소설에 대한 비의도 훨씬 빨리 깨쳤고, 형은 한국 문학계의 별이 되었습니다. 이지적이고 지적인 형은 세상을 문명비평적인 시각으로 통찰하고, 착하고 정직하게 세상을 살면서 후학들에게 좋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전범을 보였습니다. 또한 형은 천재이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한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끝까지 글을 써내는 근면한 작가의 본을 보였습니다. 동갑내기이지만 형은 나에게 좋은 거울이었습니다.

이제야말로 더 좋은 작품을 써내야 할 터인데 형은 석양의 파장바닥에서 짐을 꾸려 선학동 나그네 되어 떠나고 있습니다. 형은 가난에 밀려 출향했다가 형이 늘 가슴속에 품고 사는 천관산보다 더 큰 산자락이 되어 고향을 끌어안았습니다. 형의 문학은 원초적인 고향 혹은 어머니를 위한 슬프고 향기로운 헌사였습니다. 형은 이 세상 고독한 사람들의 영혼이 지향해야할 바를 제시해주었습니다. 형이 투병한다는 말을 듣고 편지를 보낸 날 밤 꿈에 우리는 대작을 하며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을 시로 썼는데, 그 시를 형을 보내는 말씀으로 드릴까 합니다. 형은 형의 신화 세상 선학동으로 떠나가고 있으므로.

스물 몇 해 전, 내 처 아제이자, 형의 고추맞잡이 동무인 태웅이의 일로 만났을 때, 내가 ‘형의 연은 상층기류를 탄 까닭으로 짚더미에 기대앉은 채 연줄을 잡고만 있어도 하늘 높이 잘 나는데, 내 연은 조악해서 좋게 날다가도 자꾸 가라앉곤 하므로 줄을 잡아채면서 달음질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날마다 죽을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없소’ 하고 말하자 형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요.’
‘미백 형, 우리 아직은 그 연줄 놓지 맙시다.’
이 편지 보낸 날 밤 꿈에 우리는 만나 대작하며 말했습니다.
‘결국은 그 연줄 놓고 가야겠지요.’
‘그럼 우리 연들은 어디로 날아갈까요?’
‘글쎄, 어디로 갈까요.’
‘어린 시절 별똥들 떨어져 쌓이던 천관산 천왕봉 억새 숲 근처 어디일 터이지요.’
아, 미백 형, 형이 만든 신화세상 선학동에서 부디 만복을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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