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에 정동진이 있다면 남해안에는 정남진이 있다. 서울의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정남진은 전남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의 사금마을이다. 이웃한 강진이 '남도답사 1번지'라면 장흥은 '봄꽃답사 1번지'라 할만큼 다양한 봄꽃들이 나그네를 기다리며 '날 좀 보소'를 외치고 있다.

정남진이 있는 장흥은 아직 남도의 유명관광지에 가려져 있다. 봄꽃 명소를 돌아다니다 보면 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 치이기 일쑤지만, 장흥에 가면 한결 여유롭게 다양한 꽃을 보며 봄마중을 할 수 있다.

안양면의 청매원은 3월 중순에서 말까지 매화가 만개해 봄손님을 맞는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천관산 동백숲을 비롯해 장천재, 묵촌리 동백림, 보림사 등은 4월까지 아름다운 동백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남산공원은 벚꽃이 공원 전체를 눈처럼 덮어버리고, 한재공원은 국내 최대의 할미꽃군락지로 유명하다. 그런가하면 정남진 바닷가와 회진면 선학동마을에는 유채밭이 조성되어 노란색 봄이 내려앉았다. 5월이 되면 제암산(807m)을 온통 벌겋게 달구는 철쭉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보림사 부도밭의 동백

유치면 봉덕리의 가지산 계곡에 자리한 보림사는 동양 3보림의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다. 경내에는 3층석탑 및 석등(국보 제 44호), 철조비로사나불좌상(국보 제 117호) 등의 국보 2점과 목조사천왕상(보물 제 1254호)등 보물 7점, 장흥전 의상암지 석불입상 등 다수의 지방문화재가 남아 있다. 사찰 앞마당의 보림약수는 한국자연보호협회가 '한국의 명수'로 지정한 물로 목넘김이 부드럽다. 보림약수 주변의 동백이 화사한 자태를 뽐낸다.

동부도가 우뚝선 부도밭 옆을 붉게 물들이는 동백은 내리쬐는 봄햇살에 눈이 부시다. 이끼낀 부도 위에 동백꽃이 떨어져 고풍스런 분위기에 강렬함을 더한다.

용산면의 '묵촌리 동백림(전남 문화재자료 제 268호)'은 옛날 묵촌마을이 형성되면서 마을의 청룡등이 약해 도기소(옹기점)의 빛이 마을을 비추면 못쓴다 하여 그 불빛을 막고자 조성된 인공림이다. 청룡등 자락부터 마을 어구까지 동백나무와 소나무, 대나무 등을 심어 마을이 태평성대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가 깃든 곳이다.

동백의 수령은 250~300년으로 추정되는데 15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나무뿐만이 아니라 숲길 바닥도 온통 붉게 물이 들었다. 동백은 나무에 매달려 한창 피어 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바닥에 떨어져 마지막 생명력을 불사르는 자태가 더 곱다.

묵촌리 동백림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아직 외지인이 찾는 발길이 거의 없다보니 동박새와 물까치 무리의 해맑은 울음소리가 숲을 채운다. 숲 가운데에 벤치도 두 곳이 조성되어 있어 멋진 쉼터가 되어주는데 연인들의 데이트장소로도 좋다.

회진면의 선학동마을은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이 자리한 곳이다. 원래 진목마을이었으나 영화에서 불렀던 마을이름인 '선학동'으로 바뀌었다. 바다와 마주한 도로변 옆에 세트장이 들어서 있어 파도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이곳은 송화(오정해)가 한동안 머무르던 주막으로 나왔던 곳으로 빨간 슬레이트지붕을 이고 있다. 주막을 삥둘러 쌓은 돌담이 옛고향집을 떠올리게 한다. 세트장 앞의 언덕에 소나무 몇 그루가 넉넉한 품으로 가지를 뻗고 자라고 있어 평화로움을 더한다.

주막 마루에 걸터앉아 고개를 들면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바다가 나그네를 유혹한다. 바다 오른쪽으로 자리한 커다란 섬 노력도가 한폭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하얀 교각 위로 빨간색 다리가 육지와 이어져 있어 또다른 풍치로 다가온다. 세트장 주변의 논밭은 이즈음 유채꽃을 피워올리며 노란색으로 치장을 한다. 바다와 영화세트장, 그 앞의 노력도와 어우러지는 풍광에 나그네의 마음까지 노랗게 물이 든다.

인근의 회진면 진목리에는 천년학의 원작인 '학동나그네' 쓴 이청춘 생가가 자리하고 있어 함께 들러볼만하다. 복원된 방안으로 들어서면 이청춘이 쓴 수많은 책과 천년학 영화촬영 장면 등이 길손을 반긴다.

이제 할미꽃을 만나러 회진면 한재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바닷가의 야산에 3만평 규모로 대한민국 최대의 할미꽃 군락지에서 3~4월까지 꽃을 피워올린다. 히 무덤 주변에서 키작은 할미꽃이 고개를 내밀며 붉은색으로 핀다. 할미꽃을 제대로 담으려면 자세를 잔득 낮추고 꽃과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낮은 포복자세로 온몸을 바닥에 엎드린채 촬영에 열중하는 사진작가들의 모습도 보인다.

선학동 마을의 영화 천년학 세트장

공원의 돌바닥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길 양옆에서 낮은 키로 몇송이씩 무리지어 피어오르는 녀석이 있어 유심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한재 정상인 너럭바위에 오르면 탁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멀리 득량만 바다와 정남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고개를 돌리면 유인도인 노력도를 비롯해 탱자도, 죽도, 소마리도 등의 무인도가 옹기종기 모여 키재기를 하고 있다.
발 아래엔 회진포구와 덕산리 마을이 자리한다. 마을 옆으로 경지정리가 잘된 논에서는 보리와 마늘이 초록빛으로 커가며 봄기운을 전한다.

장흥의 봄꽃 명소를 돌아보려면 최소한 1박2일은 발품을 팔며 다녀야한다. 새벽에 일찍 나서 영화 축제촬영지로 유명한 소등섬의 일출을 보고, 저녁에는 정남진천문과학관(061-860-0651, star.jangheung.go.kr)에 들러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면 보다 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추천 맛집 : 흥군청 옆에 자리한 신녹원관(061-863-6622~3)에서 남도전통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피고막, 참숭어회, 키조개회, 홍어회 등 40여 가지의 산해진미가 한상 가득 나온다. 안양면의 여다지회마을(조개구이, 862-1041), 안양면 수문포의 갯마을횟집(키조개요리, 862-1203) 등이 남도의 맛을 자랑한다.

추천 숙소 : 문해수욕장 옆에 자리한 옥섬워터파크(862-2100, www.oksum.co.kr)는 재래식 불한증막, 찜질방, 사우나, 해수녹차탕, 세미나실, 사계절워터파크 등을 갖춘 웰빙레저타운이다. 일반실과 스위트룸, 단체룸 등 다양한 객실을 갖추고 있어 가족여행이나 MT를 하는데도 손색이 없다. 천관산자연휴양림(867-6974)의 통나무집 숙소나 장흥 읍내의 진송관광호텔(864-7775)을 이용할 수도 있다.

한재공원의 할미꽃 뒤로 어린이가 지나고 있다

한재공원에서 할미꽃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시민기자 프로필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중이다. 저서로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
창원DSLR클럽(www.cwdslrclub.kr) 회원으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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