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학교 소식101호/2003년 11월 25일
출처-http://webzin.chosun.ac.kr/sosik/101/12.html



-발굴기간 : 기간 2003-07 ~ 2004-05
-소재지 :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300-41번지 일대
-내 용 :

우리나라 후기구석기시대 유적 중에 가장 큰 규모로써, 그 면적은 4만 평에 이르며, 이중 조사된 면적은 6천여 평이다. 또한 후기구석기 문화층에서 3만여 점의 유물이 드러나 밀집도 역시 매우 높다. 그 가운데 서로 붙는 응회암제 몸돌과 격지가 무리지어 있고, 좀돌날몸돌과 좀돌날이 모여 있으며, 망치도 군데군데 드러나 전 지역이 석기제작터로 쓰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새기개, 밀개 긁개, 자르개 등의 다양한 잔손질석기가 있다. 특히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간돌자귀와 마름질석기(초벌 다듬은 석기처럼 긴 네모꼴 석재의 가장자리를 다듬은 뗀석기), 숫돌, 갈돌, 갈린 판석과 자갈, 홈석기, 이형석기 등의 간석기가 특징적이다. 뗀석기의 재료로는 석영맥암, 규암, 산성화산암, 수정, 흑요석, 옥수 등이, 그리고 간석기의 재료로는 산성화산암, 반상변정질 편마암, 편암, 사암, 니암, 규암 등이 쓰였다. 한편 구석기인들의 살림 모습을 살필 수 있는 화덕자리 6개가 나왔다.

-성 과

신북유적은 4만 평이 넘는 유적의 규모와 3만여 점의 유물, 6개의 화덕자리 그리고 절대연대를 종합해보면, 22,000년 전이 중심 연대인 좀돌날석기 단계의 대규모 살림터로 여겨진다.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 끼움날연장 등의 사냥도구와 자르개, 밀개, 긁개, 새기개, 간돌자귀 등의 연장은 신북유적의 구석기인들이 발달된 사냥기술로 사냥한 짐승을 해체하고 가죽을 손질하며 뼈나 뿔, 나무 등을 가공하였고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숫돌, 갈린 판석, 갈돌, 갈리고 패인 자갈과 둥근 홈석기, 초벌 다듬은 석기 등은 갈기, 빻기 등의 다양한 일들이 벌어졌음을 짐작케 한다.
이로써 신북유적은 우리나라 남부 지역의 후기구석기문화뿐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후기구석기시대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뗀석기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한반도구석기 시대에 갈아만든 간석기를 사용했음을 입증해주는 고고학적 유물이 출토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에서 후기구석기 시대의 대규모 살림터를 발굴 조사하고 있는 박물관(관장 이기길 인문과학대학 사학과)은 11월 18일 오후 1시 30분 발굴 현장에서 지도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이날 지도위원회에는 손보기 연세대박물관 초빙교수, 이융조 충북대 교수,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과장, 정영화 영남대 교수, 최복규 강원대 교수, 박영철 연세대 교수, 이헌중 목포대 교수 등 고고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기길 박물관장은 뗀석기와 함께 간돌 자귀와 간 흔적이 뚜렷한 돌 등이 드러남으로써 진주 장흥리, 대전 용호동 유적 발굴성과를 참조할 때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에도 간석기가 제작되고 사용되었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구석기시대의 마제석부가 나온 예로 일본이 유일한데, 이 석기는 칸노키유적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3만년 전 무렵에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고 신석기시대에 가서 다시 등장해 일본학자들은 자신들의 마제석부를 세계 최고의 간석기라고 자랑해 왔다.

지난 7월 25일 발굴에 들어간 장흥-장동간 도로 신설 구간에 있는 이 유적의 조사 면적은 6천여 평으로 현재 1만여점의 석기가 발굴되었다. 조사 범위의 북쪽인 신북마을까지 갈색찰흙층이 분포하고 같은 유형의 석기들이 발견되어, 유적의 범위가 4만여평에 이르는 초대형급으로 가늠된다. 신북유적은 1만여점의 석기가 일정한 기울기로 분포하고 있어 당시의 생활면이 잘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적 전체에 걸쳐 망치, 몸돌과 격지, 완성된 석기, 부러지거나 재가공된 석기 등이 분포하여 석기를 만들고 사용하였던 살림터로 여겨진다.

출토 석기는 창끝찌르개,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 새기개, 밀개, 긁개, 대형자르개 등 후기구석기 후반부를 대표하는 종류들이다. 특히 뼈나 뿔을 다루는 새기개가 다양하게 나와 작살이나 끼움날연장을 만드는 일이 빈번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창끝찌르개와 슴베찌르개는 사냥 기술이 최고조로 발달하였음을 보여주며 밀개, 긁개, 자르개 등은 사냥한 짐승의 가공이 빈번하였음을 알려줘 사냥과 채집을 위주로 한 구석기인들의 살림 방식을 자세히 복원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층의 시기는 석기갖춤새에서 후기구석기 후반기일 것으로 미뤄지는데, 이는 문화층이 갈색찰흙층에 들어있는 점으로도 뒷받침된다. 갈색찰흙층은 많은 유적의 조사 결과 상부 토양쐐기 위에 쌓인 층으로 학자에 따라 2만년에서 1만5천년 전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적의 규모는 도로 신설 구간이 통과하는 검은둥이 언덕의 대부분을 포함하여 4만여 평으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후기구석기 유적 중 2만여 평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순천 월평유적보다 두 배가 넘는 크기로, 인근 20여 지점의 구석기 출토 지점들과 함께 보성강 최상류 지역에서 펼쳐졌던 후기구석기인들의 삶과 문화를 잘 대변하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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