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소치 허련의 탄생 200주년과 남농 허건의 탄생 100주년이 겹치는 해이다.
아름다운 남도의 땅에서 예술적 혼을 이룩한 이들이 남긴 족적은 너무나 거대하기만 하다. 이들이 있었기에 남도는 예술의 땅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예술의 의미를 되살펴보면서 남도의 문화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제1부 남도예술은행

(1)토요경매에서 발견한 희망

서양화가 색채의 마술로 사람을 사로잡는 반면, 한국화는 은은하고 진득한 멋의 세계로 스폰지 마냥 시선을 흡수한다. 멋의 농담과 여백의 철학이 혼탁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아류문화에서도 전통 남종화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 이런 이유이다.
그렇지만 한국화가 고리타분하다고? 천만의 말씀.


아침저녁으로 운무가 숲을 이루는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진도 첨찰산의 운림산방은 지난 2006년 8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새로운 실험적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전통 남종화의 예술혼이 맥을 이어가며 현대적 마케팅과 결합되어 있는 전남도가 운영하고 있는 ‘남도예술은행’의 토요 경매가 바로 그 현장이다.


그 소문의 현장을 남농 허건 선생 문하에서 20년을 사사한 소농 조남윤 선생과 함께 남농미술관 앞에서 만나 출발을 했다. 남농미술문화재단의 운영위원이기도 한 선생은 한국화의 현재적 생존과 발전방향에 대해 관심이 많다.
자연히 대화는 요즘 지역 한국화 화단의 이야기로부터 남농 시절 야사까지 다양하다. 차창을 스치는 남도의 들녘과 산하가 겨울인데도 푸르고 울창하다. 진도까지 가는 한 시간 여정이 고즈넉하면서도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 하다.
소치가 “찾아오는 이 없는 곳에서 자연과 대화 한다”고 읊었던 운림산방은 복원된 전통 가옥 옆에 현대적 상설 전시관과 작품 판매 전시관 등을 갖춘 곳으로 탈바꿈했다. 11시부터 시작되는 경매에 앞서 한국국악협회 진도군 지부의 고수 함재권씨와 명창 박영례 씨의 소리가 분위기를 돋웠다.


한국화, 서예, 문인화 등 3개 부문의 작품 30여점이 이날 경매되었으며, 시중 가격보다 30~50% 싼 가격에서부터 출발했다.
“모든 생명들의 근원인 섬과 바다를 주제로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노애락과 꿈과 희망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입니다. 바람 없이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작가 본인이 그 섬 속으로 들어가서 체험한 인상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하얀 여백의 중앙에 섬을 배치하여 부각시킨 것이 돋보입니다.”
전남 도에서 현장에 나온 서선숙 씨의 설명이 이어지자, 그림을 그린 작가 박득규 씨가 앞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작품 설명을 하고 인사를 한다. 아가씨 한 분이 손을 번쩍 들자, 흥이 겨운 서 씨가 “자, 작품구입을 희망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2만원을 올립니다. 또 다른 분 없습니까”


다른 사람이 사인을 보낸다. 더 이상 가격을 올리는 사람이 없자 낙찰되었다는 신호로 다른 진행자가 징을 때리며 축하해준다. 얼핏 주변을 둘러보니, 김순석 정찬종 김영곤 장근헌 김신재 씨 등 목포의 작가들도 보인다. 이들은 현장 분위기를 보며, 자신들의 그림 발전 방향을 생각하기위해 온 것이다.
이날 경매된 작품은 4점이었으며, 목포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정찬종, 조선, 박득규 씨 등 3점이나 되었다. 이날 열린 경매는 75회째였는데, 그동안 모두 216점, 7천 4백만원 가량이 낙찰되었다.


문동식 도 예술과장은 “우수한 전업 작가들을 지원하고 침체된 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전남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추진하고 있는 장기 미술지원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문 과장에 따르면 도는 토요경매가 시작된 이후 약 1년 반 동안 남도예술은행 전용 홈페이지에 경매예정 작품 목록을 게재하고, 각 언론사에 매주 홍보를 의뢰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는 전화와 우편, 인터넷 메일 등으로 정기적으로 경매 물건들을 받는 우수고객들도 생겼다.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한 조남윤 선생은 기쁨과 우려, 반성과 기대감이 엇갈리는 평가를 내렸다.
“남농 선생이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이렇게 세상이 바뀌다니…?
은둔의 세월 마냥 은인자중했던 조 선생이 ‘현대적 마케팅 기법과 결합된 한국화의 생존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옛날 같으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그림도 몇 개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신뢰를 받기위해서는 더 치열한 작가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빗대 말한 것이다.


남도예술은행측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선생의 말로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기를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돈을 쓰되 낭비가 아닌 것으로써 미술이 가장 적당하다는 거예요. 돈을 쓰면서 돈을 벌면 더 좋은 거지요. 재미도 보고 돈도 버는 것이 미술의 속성이지요. 또한 그림을 살 때는 선택하는 묘미도 있어요.”
<전남광주지역신문협회 17개사 공동기획=글. 사진 정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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