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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승우- 신작 “그곳이 어디든” 펴내현실,환상에 대한 몽환적 탐색- 삶의 본질 다뤄 “이 땅에서의 삶은 어디를 가나 결국 타향일 뿐”
관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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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2.26  11: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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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개의 경우 '나'에 앞서 '나의 삶의 정황'이 존재한다. 내가 나의 정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정황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은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세계는 나에 앞서 이미 이루어져 있다. 세계는 존재에 선행한다."(29쪽)

작가 이승우(48.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가 『식물들의 사생활』이후 7년 만에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인 유배지와 디름없는 던져진, 처절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그곳이 어디든(현대문학 간)’을 펴냈다.
전작 ‘식물들의 사생활’과 ‘생의 이면’으로, 프랑스 언론의 격찬을 받았던 이승우는 두 번이나 프랑스 페미나상 최종 후보에 오를 정도로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한국 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던 작가이다.

이번에 출간된 신간 ‘그곳이 어디든’은 지난 2006년 3월부터 1년간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장편소설로, 작가는 ‘서리'라는 낯선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삶의 이면을 진지하게 관찰한 소설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예부터 귀양지로 이용돼오던 '서리' 라는 마을. 지형적 특성 때문에 한번 들어가면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감옥'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주인공 유가 좌천돼 이 낯선 마을, 신기루 같은 공간에 근무지 발령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리'는 이방인에게 늪과 같은 곳이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어렵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더욱 빠져드는 곳이다. 인수인계를 해줄 전임자를 만나지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 전락해버린 유는 서리에서 서서히 감각을 잃어간다. 사건이 전개되는 내내 독자들은 마치 신기루 같은 ‘서리'의 이미지에 갇혀 주인공과 함께 혼돈에 휩싸인다. 살아 있는 모든 감각이 서서히 죽어가는, 그렇게 죽어감으로써 오히려 삶의 진실한 이면과 마주서는 곳. ‘그곳이 어디든’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서리라는 공간은 소설 속에 축조된 가상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공간을 오버랩한다.

서리에서의 사건들로 만신창이가 된 유는 붉은 빛을 내뿜는 서산봉의 동굴 안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현실의 끈을 모두 놓아버린 그에게 서산봉 동굴 속의 돌집은 죽음처럼 편안하다.

‘자살'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서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여자, 폭력배들의 감시와 강요 속에서 기록을 통해 서리에서의 삶을 버텨가는 노아의 딸, 영원한 피안의 세계를 준비하는 노아의 돌집, 그리고 죽음을 앞둔 전 남편과 함께 서리를 찾아온 유의 아내……. 서리의 모든 것들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 그렇게 삶의 본질과 맞닿으려는 순간, 결국 삶은 허무한 신기루처럼 또다시 사려져버린다.
‘그곳이 어디든’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모순과 역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잠언의 문장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현실인 듯 아닌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든 존재하는 곳 서리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묻는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행복한가, 라고.

강유정씨(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은 의젓한 허무주의와 근본적 회의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생에 대한 가장 근원적 지점까지 질문을 밀어붙이는 치열성은 독자를 얼얼하게 만들 정도이다. 이승우의 문장은 구체적이면서도 근원적이지만 추상적 주관성에 매몰되지 않는다. 삶과 배반, 비겁과 도피가 아무렇지 않게 한 문장 안에서 얽히고 대치한다. 어느 하나 쉽게 놓칠 수 없는 이 문장들은 스스로 ‘사소하고 시시한 이야기’ 이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소설로 구체화된 삶이며 소설보다 더 오래된 영원의 잠언으로 격상된다.

‘그곳이 어디든’은 작가 이승우가 글로써 조형한 하나의 가치이지만 스스로가 매개인 자유로 오롯하다. ‘그곳이 어디든’에 점철된 역설과 모순은 실상 삶의 이치이자 근본적 실재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아이러니를 삶의 이해할 수 없는 본질로 규정했다면 이승우는 그 아이러니를 살이 닿듯 아프게 보여준다. 길항하는 대상들 가운데 사람들이 진입하고 나라는 자명한 존재가 이질적 자아와 뒤섞인다. 추방지가 낙원이 되기도 하며 낙원이었던 곳이 꿈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호명하는 순간 실체는 사라지고 손에 잡히자 빠져나가고 마는 실재, 그것이 곧 작가 이승우가 말하는 삶의 가치이며 원리이다. 이승우는 손과 발로 접촉하던 허망한 삶에 언어의 투망을 건져 영원성을 복원한다.” 평하고 있다.

작가는 “다른 공간이 아닌 다른 삶, 이동이 아니라 갱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담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돌아보면 우리의 현실은 비참합니다. 그것이 인간 내면의 종교적인 가치를 주목하게 하죠.”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의 실존문제를 논리적인 언어와 설득력 있는 서사로 풀어낸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을 연상케 한다.


<이승우 프로필>
▶1959년 전남 장흥 관산읍 신동리 출생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중편 ‘에리직톤의 초상’ 당선 등단
▶1983년 서울신학대 졸업
▶2001년~현재 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집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세상 밖으로’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가시나무 그늘’ ‘따뜻한 비’ ‘황금 가면’ ‘생의 이면’ ‘내 안에또 누가 있나’ ‘사랑의 전설’ ‘태초에 유혹이 있었다’ ‘식물들의 사생활’ 등
▶대산문학상(1993) 동서문학상(2002), 현대문학상(2006)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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