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의 덕운 위황량씨(德雲 魏滉良. 81)가 지난 10월 18일 문화훈장(4등급 옥관)을 서훈했다. 장흥 출신으로 문화훈장 서훈은 지난 2004년 윤수옥 전문화원장이 문화훈장(5등급 화관)을 받은 이래 위황량씨가 두번째. 최근 들어 문화훈장 서훈자가 주로 중앙무대의 문화예술인들이 차지하고, 지역문화 인사들의 서훈은 갈수록 줄어들면서 지역 문화인사들의 문화훈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추세. 예년에는 4,5명의 지역 문화원장 출신 서훈자들이 올해는 고작 2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또 전남북 출신 문화인사로는 장흥의 위황량씨가 유일할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황량씨의 문화훈장 서훈은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역문화계에서도 위황량씨의 문화훈장 서훈은, ‘문림고을 장흥의 큰 자랑이며 자존이 아닐 수 없다’는 평이다.
2007년 문화훈장을 서훈한 위황량씨를 만나보았다.

■“남은 여생, 지역문화발전을 위해 헌신”

“불미하고 부덕한 사람이 큰 훈장을 받아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지역사회의 문화창달과 교육사업, 그리고 천관산 홍보활동과 숭조사업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봉사해 오고 노력해 온 제 삶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해, 저 생애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훈장은 남은 여생에도 더욱 지역사회와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의 상으로 알고, 더더욱 남은 여생 최선을 다해 지역문화 육성과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겠습니다”
훈장 서훈에 대한 위황량씨의 소감이다.
“천관산가꾸기 사업은 아직 미완입니다. 많이 쇠잔해진 기력이지만, 앞으로 천관산가꾸기 사업도 주력할 것입니다. 특히 산저마을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선 지정 추진 운동에 적극 참여할 생각입니다.”

■이름다운 60년 봉사인생

덕운 위황량씨. 올해 나이 81세다. 지난해 회혼과 80순 잔치를 갖기도 했다. 20세 때 결혼하고 22세 때 약방(신생약국)을 개업했으니, 올해로 그의 약업인생 60년이며, 성인으로서 삶도 60년이다.
그의 ‘60년 사회 인생’을 돌아보면, 참으로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영위해 온 삶이다. 그의 기부적인 삶도 26세 때부터 시작되었고(26세 때 관산지서에 반송을 기증하고 27세 때 숭조모선위토답 8두락 봉정), 29세 때 당시 관산면 지방의원에 당선되었으니 30세 이전부터 사회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셈이다.
그후 그의 사회봉사, 문화창달을 위한 헌신, 교육 장학사업 등 지역을 위한 헌신과 봉사활동이 50년동안 한결같이 지속돼 왔으니, 참으로 열정적이고 투사적으로 치열하게 ‘봉사적 삶’을 불살라 온 것이다.
그가 60여년간 숭조를 위한 일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기부ㆍ헌납행은 총 45회에 걸쳐 2억 8천여 만원에 이른다.
그는 대부호도, 기업가도 아니었다. 또 도회지에서 상업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조그만 시골에서 펼쳐온 약업인생이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60년 세월을 한결같이 지역사회를 위해, 천관산 가꾸기와 홍보를 위해, 지역의 문화창달을 위해, 지역 후학들의 면학을 위해, 끊임없이 나누어주고 봉사하고 헌신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그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선비 중의 선비였다. 아름다운 義人의 한 사람이었으며 書道에 파묻히면서 약국의 약사로서 ‘목사고을 회주 옛터 관산의 수호자’로서 빛나고 향기나는 삶을 영위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생의 말년에 자랑스런 문화훈장을 서훈했다. ‘복받은 삶’이 아니라 그 스스로 복을 만들어 온 삶에 대한 대가이리라. 하여 그의 훈장이 더욱 향기나는 아름다운 훈장인 것이다.
덕운 위황량 선생의 60년 지역문화운동과 문화창달에 대한 공적들을 정리해 본다

○ 모선(慕先)사상, 유림문화 육성에 기여
위황량씨의 봉사정신은 그의 철저한 모선(慕先) 숭모사상에서 시작됐다.
그의 나이 27세때 신생약방에서 번 돈으로 매입, 그의 재산목록 제1호가 되었던 논 8두락을 숭조위조탑으로 헌납하던 것을 시작으로 ▶조부 덕암공에 대한 ‘덕암 의렬록’, ‘덕암 유고’ 발간 ▶종 6대조 존재공의 ‘정현신보’ 번역 발간 ▶위씨 사우(祠宇)인 하산사(霞山祠) 신실 건립 ▶존재 위백규 공 동상건립 ▶덕암 위공 의렬비 건립 ▶전국 위씨 종친회 장학기금 협찬(2,000만원) 등 그의 애족숭배 사상과 선조에 대한 현창사업은 남달랐다. 모선 숭모사상에 투철했던 위황량씨는 유림인(향교 전교 역임)으로서 유림문화 육성에도 적잖게 기여했다.
특히 ▶‘유가요람(儒家要覽)’ 출간 ▶장흥향교 계단,제복,제기 정비 협찬 ▶장흥향교 윤리성금 기탁(2,000만원) ▶장흥충효회관 건립기금 출연(1,100만원) 등 향교 및 유림문화 활성화를 위한 활동을 비롯 기부ㆍ기탁행의 수범은 유림활동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장학사업ㆍ교육사업ㆍ사회 기부도 헌신적
위황량씨는 관산중학교ㆍ관산고등학교 초대운영위원장, 장흥교육청 행정자문위원장, 관산고교기숙사건립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각종 교육기자재를 헌납하고 기숙사 건립을 주도하고 관산고교 낙학(樂學) 면학 석탑 건립 등 지역교육 환경개선을 위한 교육관련 활동과 교육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청운장학회 창립과 제1ㆍ2ㆍ3대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장학사업을 선도했으며, 개인 자격으로 3천만원을 출연하여 천관장학회를 창립해 명문대학 합격자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오는 등 지역인재 육성에도 기여해 왔다.
또 관산읍 마을표석 42개 방범등 7개 설치, 관산읍 경로당 유도회에 답 3두락씨 봉정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한 기탁행에 모범을 보이는 등 숭조ㆍ사회ㆍ장학 부문에서 선도적인 기부문화 정착에 기여하였다.

○천관산 가꾸기 사업에 헌신적 참여
위황량씨는 특히 천관산 가꾸기에 열정적으로 참여 ▶천관산 봉수대 복원(86) ▶회주고지 천관낙토 천관산 표석 건립(91) ▶천관산 도록(‘사진으로 본 천관산’-4×6배판, 24면, 올칼라) 3,000부 발간 전국에 배포(92) ▶‘지제지(支提誌) 500부 발간 배포(74) ▶‘지제지(支提誌) 한글 번역본 발간 협찬(5백만원,92) ▶장천동 도화교 건립(78) ▶천관산 장천동에 영월정 건립(93) ▶장천동에 회주목사골 및 천관산 홍보석 건립(04) 등 천관산 알리기와 천관산 가꾸기 사업에 평생을 결쳐 헌신적으로 주도해왔다.
지금 80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위황량씨는 관산읍 천관산 고인돌(산저마을 성주골 고인돌)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천관산 장천동의 만남의 광장 조성 운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장흥문화원 활동, 향토사 발굴 적극참여
위황량씨는 지난 1986년부터 장흥문화원 이사에 피선되어 9년동안 정기간행물 <장흥문화> 편집에 적극 참여한다.
그리고 향토문화보존위원회 부위원장, <장흥군지>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며 향토사 발굴ㆍ보존ㆍ복원의 실무를 담당하고, 장흥문화원 회원 증강에도 열성을 다하는 등 장흥문화원 활성화와 향토문화 발굴에 기여하게 된다.
위황량씨는 또 서예인으로서, 국제예술서화대전 금상(87), 대한민국예술대전 금상(91) 등 29회 입상 성과 등 각종 서예대전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국제교류 서예전에 13회나 참여했으며 특히, 2003년부터 3년동안 전남도내 각 시군 경로당에 가훈 및 휘호 400여장을 기증하는 등 서예인으로서 지역의 서예문화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60여년 봉사적 약업경영- 지역민 보건에 기여
위황량씨는 또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인 지역에서 60년동안 약방을 경영하며 단 하루도 걸르지 않고 연중무휴로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약방 문을 열어 지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등 고 지역민 보건에 기여해 왔다.

<위황량 선생 프로필>
▲1948 관산면옥당리 210번지에서 신생약방 개업 ▲1955~1961 관산면제2대, 3대지방의회 의원 당선 ▲1972 통일주체국민회의(초대)대의원 당선 ▲1973~1981 장흥군 군정자문위원(8년) ▲1974~1978 관산 로타리클럽 창립. 초대?2?3?4대회장 ▲1975~1977 청운장학회 창립. 초대?2?3대회장 ▲1978 통일주체국민회의 제2대의원 피선 ▲1980~1992 관산 소도읍가꾸기(1차,2차)추진위원장 ▲1980~1987 고읍 새마을금고 창립이사 ▲1985~1987 관산면 번영회장 ▲1986~1989 장흥문화원이사(9년) ▲1987~1996 고읍 새마을금고 이사장 ▲1986~1996 장흥향토문화보존위원회 부위원장 ▲1988~1990 장흥향교장의 ▲1989~1998 유도회 전남도본부 부회장 ▲1989~1991 관산중학교 초대운영위원장 ▲1990~1993 장흥군지 편집위원 ▲1991~1993 관산고등학교 초대운영위원장 ▲1991~1997 관산고등학교 기숙사 건립 추진위원장 ▲1992~1994 법무부갱생보호회 장흥?강진 회장 ▲1993 장흥교육청 행정자문위원장 ▲1993~현 천관장학회설립(개인),운영 ▲1993~2003 국민예술협회초대작가(서예) ▲1994~1996 충효사적보존연구회(유림회관) 건립추진위원장 ▲1994~1998 국민예술협회이사 ▲1995 전경련장흥군회장 ▲1995~현재 장흥군관광자원봉사원(촉탁) ▲1996~1999 새마을금고연합회이사 ▲1997~1999 성균관 전의(임명) ▲1997~2003국민예술협회감사 ▲1998~현 한국문화예술연구회초대작가 ▲1999~2002 새마을금고훈포상 심사위원 ▲2002~2004 장흥향교 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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