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2007.10.07 /글=황온중, 사진=이제원 기자




“한 나라의 국민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은 국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처 난 한글로는 우리의 미래가 없습니다.” 9일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지 561돌. 교직을 정년퇴임한 후에도 국어사랑과 나라사랑으로 올바른 국어교육을 위해 앞장서온 이가 있다. 그는 바로 60년 동안 국어교육 바로잡기 전령사로 활동 중인 아동문학가 김녹촌(80·한국 어린이문학협의회 고문)씨다.

“현재 우리 국어교육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글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논술 열풍이 불며 어릴 때부터 학원에서 시험을 위한 논설문 외우기 교육에 급급해 하고 한글도 옳게 모르고 글 한 줄 제대로 못 쓰는데 외국어교육과 어학연수에 열중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김씨는 1947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남 장흥군 부산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해 92년 경북 경주시 현곡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그의 애틋한 국어사랑과 열정은 삶 그 자체다. 김씨는 교감 시절인 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연’을 출품했다가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동시 작품인 ‘겨울아이들’, ‘들국화’, ‘연’은 현재 초등학교 4, 5, 6학년 교과서에 실려 아이들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자신이 지도한 어린이의 글을 모아 만든 문집은 20여권에 이른다.

김씨의 국어교육 연구는 현장에서 배어나온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가 교장으로 재직할 때 아이들의 형편없는 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은 전교생 ‘받아쓰기’였다. 학년마다 각 반을 돌면서 10여개의 단어를 가지고 받아쓰기를 해보면 정답률은 부끄럽다 못해 참담할 정도였다.

그는 가는 학교마다 ‘한글 바르게 쓰기 운동’을 벌이며 힘겹게 이끌고 나가느라 가슴앓이도 많이 했으며 한풀이 술을 혼자서 많이 마시기도 했다고 말한다.

“일부 교사들은 맞춤법이 틀려도 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린다며 탓하지 말라고 하지만 글자를 틀리게 쓰면 야단을 쳐서라도 정확히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가 국어교육이 잘못된 이유로 꼽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교사는 1학년 한글입문기 지도 때 받아쓰기 후 그냥 넘기지 말고 정착 여부를 확인한 뒤 치료까지 해서 완벽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도 기초 다지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모래땅 위에 세운 건물은 결국 무너지지요.”

‘국어교육 부재’의 또 다른 원인으로 그는 영어를 더 중요시하는 사회분위기를 꼽는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영어학습에 열을 올리는 학부모는 있지만 한글을 제대로 가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됩니까.”


▶김녹촌씨가 인천 계산성당 글쓰기교실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들에게 숙제로 내준 일기를 점검하고 있다.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그는 “어려서부터 본보기 글을 베껴 써 보고 ‘마음속 비밀친구’인 일기를 성실히 써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의 강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발벗고 나서는 김씨. 그는 10여년째 인천, 성남, 일산 등지의 여러 강의센터에서 어린이 글쓰기에 대한 부모교육과 초등학생을 위한 교육 일정을 마치면 문집을 만들어 발표회를 갖는다.

“국어수업도 말로 토론하고 설명하는 음성언어만으로 끝나 버리지 말고 문자언어와도 연결시켜 반드시 글씨로 써서 문자에 정착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하기, 읽기, 쓰기의 삼위일체 교육이 되고 교육 효과도 뿌리내려 어린이들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입니다.”

김씨는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집한 자료를 틈나는 대로 정리한다. 이렇게 해서 올 7월엔 글쓰기 이론서인 ‘글쓰기 박사 되는 길 1, 2, 3’을 발간했다.

글쓰기 이론서에 몰입하느라 작품 쓸 시간이 없어 늘 허전하다는 김씨는 잘못된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면 비록 내일 쓰러지더라도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우리 겨레의 혼이 담겨 있고 국어교육의 기본 중의 기본인 가갸거겨 등 ‘기본음절(한글 본문장)’ 하나 옳게 읽지도 외우지도 못하는 어린이들이 어떻게 국어공부를 할 수가 있겠으며, 또 어떻게 한국혼이 담긴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겠습니까?”

몸은 젊은 시절 같지 않지만 한글 사랑은 식지 않고 오히려 더 뜨거운 노 스승. 그의 가슴은 모국어에 대한 애착과 민족애로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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