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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욱 베트남여행기(2)- 신혼여행 전담사진기사가 되어부렀써라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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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8.20  18: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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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7

베트남 호치민에서는 매일 수십쌍의 부부가 새로 탄생된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 하루 7-80쌍의 국제 결혼 부부가 번개불에 콩볶아먹듯이 결혼식을 해치웁니다.
결혼식은 했지만 신랑과 신부는 단 3-4일 베트남에서 신혼을 즐기고, 신랑 혼자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신부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기간은 보통 3-4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지만 서류의 철저한
준비가 부족하면 많게는 일년가까이도 시간이 소요되기에 결혼을 하고도 신방을 꾸미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나와 함께 동행한 방송국 PD와 저는 결혼식 전 과정을 사진을 촬영하고 인터뷰도 했습니다.
같은 호텔에 투숙한 신혼부부와 다음날 함께 작은 버스를 렌탈하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신혼부부와 함께 간 여행은 우리가 전담사진기사와 비디오기사가 되어 여행내내 촬영을 했습니다.

동행을 한 김 PD는 오늘은 절대 비디오를 촬영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6m카메라는 호텔에 두고 출발했고,
나는 그래도 저번 껀터성에서 비디오 영상으로 강을 촬영하지 못함이 아쉬워 가지고간 6m카메라를 베낭에
챙겼습니다.

혼자서 사진촬영하고 동영상도 잡겠다는 욕심도 냈지만 사실 김 PD가 분명히 동영상을 촬영할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맹골로 섬으로 가는 길은 나름대로 아름다운 풍경을 갖추고 있었기에 나는 사진을 촬영하고 김 PD는 결국 동영상을 아예 독점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베트남 처녀 가이드와 우리를 소개시킨 이남원씨 그리고 신혼부부와 우리 두명이 함께였습니다.
여행의 경비는 모두 함께 동행한 김PD가 지불했습니다.
봉고차와 가이드를 대동하는데 든 비용은 170불이었으며, 섬에 도착하여 게를 사고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우리의 통역을 맡은 베트남 처녀는 한국말을 거의 잘하지 못하고 중간에 이남원씨가 다시 재 통역을 해야만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이남원씨와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두사람은 짧은 영어와 베트남말로 서로가 의사를 소통되었지만 우리는 도무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남원씨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거나 베트남 말을 잘하지도 않습니다.
베트남에서 7년을 살았지만 베트남 말을 배우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일상적인 짧은 베트남 말과 짧은 영어가 그가 베트남에서 7년동안 여행사를 하며 살수 있는데 별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며,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저렴한 통역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치민 신도시 푸미홍호텔에서 새벽 5시경에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 나왔습니다. 외국에 가면 늘 잠을 이룰수 없어 새벽일찍 길거리로 나서는 것이 참 좋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길도 모르는 외국의 낮선 거리 단지 나 혼자 카메라에 낮선 풍경을 담는 것은 여행의 큰 기쁨입니다.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웠습니다. 너무 일찍 길을 나서기가 조금은 두려워 5시가 다되어 호텔을 나와 길거리를 걸었습니다. 한국의 산적한 일거리와 인생에서 너무 많이 진 무거운 짐들을 잠시동안이라도 잊고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낮선 땅에서 너무나 버겁게 진 짐들을 벗고자 했습니다.
상당히 빠른 시간임에도 베트남 사람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조금이라도 더 피하기 위해 이른 시간부터 일을 한다고 합니다.


지난 4월 24일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린 전남 신안에서 왓다는 전성호(45)씨와 베트남 깐터성의 농촌 처녀 아니 새신부 누엔티우(25)씨도 같은 호텔에서 만났다. 신부가 아직 한국으로 입국을 못했고, 이번에 신랑이 방문 한 것은 신부를 데려가기위해 한국 영사관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한다. 신랑은 다음 날 인터뷰를 하고 4일째 되던 날 혼자서 언제 돌아오게 될지 모른 새 신부를 기다리게 될 것이라며 하루라도 빨리 신부가 한국으로 돌아왓으면 한다고 했다. 새 신랑 신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방에서 꼼짝없이 나오지 않았고, 신랑이 다음날 아침 신부가 먹고 싶다며 한국 김밥을 구해와 호텔방으로 들어 갔다.


45살 농촌 촌각은 신부가 너무 좋다며 어쩔줄을 몰라 했다. 한국에 입국하면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맹골로 섬으로 가는 보트에서 새신랑과 신부는 꼭 붙여있었다.


호치민 외곽에는 이렇게 호화판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베트남의 대부분의 부자들은 북부 월맹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고 가이드는 말해주었다. 하기야 패방국인 베트남 월남 사람들은 모든 재산을 모두 국가에 빼았겼고, 해방이 되면서 미국과 캐나다등으로 대부분 도망을 쳤고, 남은 자들은 수용소에 끌려가 1년에서 2년을 수용소에서 보내고 빈 털털이가 되었다고 한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다. 힘있는자에게 재산과 입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알게되었다. 전쟁의 승자들이 누리는 부는 오늘의 베트남을 더 많은 빈부차이를 느끼게 하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외국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부동산을 갖거나 작은 장사나 사업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반드시 베트남 사람들을 앞세워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베트남의 토지나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는 사회주의 국가다, 외국의 기업과 국가들이 앞다투어 넘치는 인력을 이용하고자 베트남에 기업을 세우고 저임금을 노려 많은 돈을 벌고자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오직 베트남 정부만 알 것 같다.


바다의 육지 가까운 곳에서는 야자수잎으로 엮은 집들이 군데 군데 놓여있다. 집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고기를 잡는데 이용되기도 한다고 가이드는 설명해주었다.


배를 타고 40분쯤 달려서 도착한 맹골로게의 양식장 이곳에서 게를 낚으고 낚은 게를 2kg에 베트남 화폐 23만동을 주었다. 우리나라돈으로 약 15000원정도된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서로 책을 보며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는 새신랑 신부의 노력이 가상했다.








이아이들도 성장하면 한국으로 시집 오기를 바랄 것인가

도시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족들 대부분의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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