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용산면민의 날이 개최된 지난 4월 21일, 모산리의 이종태씨(65)가 면민의 상을 수상했다.


10여년 전, 군민의 상 후보로 최종심의까지 오른 적이 있었던 이종태씨였다. 그 후 군민의 상이니 면민의 상이니 하는 큰 상에 인연이 없는 것으로 치부했다는 그가 이번에 뜻하지 않게(?) 면민의 상을 수상하고 나서, 상당히 감동이 깊었던 것 같다.
사실, 이종태씨에 대해 주변사람들은 진작에 군민의 상(지역 봉사상)을 타고도 남을 만큼 봉사적 삶에 헌신해온 사람이며,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평가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씨가 이번에 용산면민의 상을 수상하게 된 그 이유인즉, 마을이장, 새마을 지도자, 여용산면 번영회장등 수많은 봉사단체 회장등을 역임하며 지역에서 면정발전과 주민위한 선도적인 봉사운동을 추진해왔으며, 장애인 가정과 모자가정생활보호대상자등 어려운 이웃을 찾아다니며 이웃사랑을 실천해, 면민화합에 모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26세 때 마을 이장을 했습니다. 그 후 해를 걸러 한두 번 쉬고 다시 마을이장을 맡곤 해서 거의 10여년 마을이장을 했지요. 그리고 새마을지도자, 자치회장, 번영회장 등등 지역에서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거의 40여년 동안 지역사회의 봉사활동에 참여해 온 것이지요.


지역에 살면서, 지역을 위해 뭔가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면 그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그들에게 뭔가 힘이 돼 주면서 아낌없이 해 준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철학이나 또는 정치적인 야망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더불어 살아가면서, 그저 제 천성이 남의 어려운 점은 지나치지 못하고, 남보다 솔선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이 그렇게 살아왔던 것뿐입니다. 그렇게 40년을 살아왔습니다”


이종태씨의 그만의 봉사철학이다. 그는 무슨 대단한 철학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바로 지역에서의 봉사는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한 봉사가 진실한 봉사가 아닌가 싶다.
우리 주변에는 이씨 같은 사람이 흔하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매우 귀하기도 하다. 한두번 그저 그렇게 그런 마음으로 해보는 사람은 많지만, 한결같이, 마치 그의 천성인양 저절로 묻어나오듯 봉사를 해온 사람은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다. 아니 우리 사회는 바로 그런 사람이 절대로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흔히 말하는 ‘사람의 향기’가 나는 법이다.


용산면사무소에 근무하며 오랫동안 이씨의 행적을 지켜봐 왔던 김모씨(56)는 “이종태씨가 청소년 선도위원이었을 때, 그는 빈곤한 학생, 소년소녀가장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하고 의류, 이불까지 전달하기도 했으며, 새마을지도자회장이었을 때는 수년간 전국에서 최초로 무연고 공동묘지벌초 봉사를 추진했고, ‘샛강은 우리가 살린다’는 표지판을 제작해 용달차에 싣고 다니며 관내 모든 하천에 표식하기도 했고, 교통사고 줄이기 운동의 일환으로 3년 동안 관내 모든 경운기 뒷문짝에 야광 페이트칠을 무료로 해주는 등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봉사활동에도 열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1992년 노대통령 때 대통령표창을 받고 상사업비로 받은 8백만원과 여기저기서 희사받은 기금으로 모산 회관 앞에서 포곡마을까지 2,6킬로를 3미터 폭으로 시멘트 포장을 추진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종태씨는 흔히 봉사활동에 열심인 사람이 범하기 쉬운 가정사에도 결코 소홀한 점이 없었다. 3남1녀를 두었는데, 그 자신이 그렇게 소망하던, 지게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도 대단했다. 해서인지, 크게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자식들 모두 나름대로 건강하게 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큰 여식은 제1회 표고아가씨 선발대회에서 ‘선’에 선발될 만큼 재모가 출중해, 남부럽지 않게 출가시켰다. 장남은 대학을 졸업하고 학사경장 1기생으로 경찰에 봉직하고 있으며, 차남은 공대를 졸업했지만 경찰이 되어 청와대에서 경호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셋째는 해병대 장교로 예편한 후 조그마한 회사를 창업하고 회사 사장이 됐다. 어느 한 자식 그릇됨 없이 건강한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육십을 지나 칠순을 앞두고 보니, 삶에 대한 열정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맘은 젊은이인데, 몸은 그렇지 못해요. 그러나 이제 저의 인생도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으니 만큼, 옛날에도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지만, 더욱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이웃을 위해 지역을 위해 헌신하며 남은 여생을 바치려고 합니다.”
이종태씨의 말이었다.

저작권자 © 장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